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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웃잖아_/Diary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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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_ 얼마나 잘 수 있는지 보자.. 하고 알람을 세팅하지 않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 빨래를 돌려 놓고,샐러드와 과일, 식빵 두 조각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그 동안 군 고구마도 올려놓고,식사를 하고 뒷 정리를 다 마치고 난 뒤 수영장으로 향했다. 주말 수영은 아침시간에는 비교적 사람이 적어서 몸을 개운하게 하는데 제격이다.수영을 하고 나오니 1시가 약간 넘었다.집으로 와서 약간 늦은 점심으로 봉골레파스타를 해먹고빨래를 널었다.군고구마를 먹겠다고 올려놨는데 집안에서 불내가 너무 많이 났다.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출입구를 열어 환기를 시킨다.바람이 시원하다. 주섬주섬 노트북과 책, 정리할 몇 가지 낙서들을 가방에 툭툭 넣어 집을 나섰다.군자동 스타벅스. 사람이 많다. 커피를 픽업해 가까스로 창가 바에 ..
나를 알아보는 자_ 사진 / [사랑을 카피하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마음이 복잡하거나, 지난 시간의 흐름들은 그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이 남긴 또 다른 흔적, 나무의 나이테가 세월의 흔적을 남기듯, 그렇게 내 마음에도 흔적드리 켜켜이 싸여가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우연히, 그러나 (주님안에서) 계획된바 대로, 목사님께 기도를 받게 되었다. 갑작스런 기도의 자리였고, 일반적인 그런 갈무리 기도를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1대1 기도. 한 명 한 명, 그렇게 기도를 해 주셨더랬다. 통변의 은사를 가지고 계신지 그날 알게 되었다.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배우자에 대한 기도도 있었다. 나를 그 사람이 알아볼 거라고 하셨다. 그 기도를 받고나서 헤깔려졌다. 왜.. 이런 상황은 몰려닥치는 걸까? '그'가 나를 알아 볼 ..
2월_ 꽃 피는 아몬드 나무 빈센트 반 고흐 [ Almond Blossom ] 2017년을 맞으며 체감하게되는 다른 세상. 다른 삶_은 세상의 변화도 아니고, 시간의 변화도 아닌_ 나의 마음의 변화인 것 같다. - 나이가 주는 인생을 대하는 자세는 사뭇 달랐다. 몹시 진지했던 서른을 맞이하던 그 순간과 달리, 이제는 조금 더 차분하게 맞이하는 새로운 세계로의 발디딤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 마음을 추스리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늘 완급 조절이 되지 않았던, 늘 급하고 뭐든 속전속결이 나에게는 속시원하던 순간들이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그것이 꼭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 그래서 나는 더디기로 작정한다. - 내가 뜻하는대로 되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받아..
울렁거림_ 울렁거림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다. 다 괜찮은 것 같았다. 물흐르듯,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불편한 기분이 드는건 뭘까. 일방통행의 길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드는건 왜 일까. 아마도 내 마음의 무게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가슴 한켠이 따끔거린다. 실패를 그렇게 많이 해 왔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완급 조절이 안되는 모양이다. 아프기 싫은데. 이렇게 울렁거리다가 아파질까봐서 .. 두렵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겠다_고 다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슴뛰는 인생_ '아마추어(amateur)'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연인'을 뜻하는 단어 'amatorem'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마추어가 어떤 일을 할 떄는 그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그 일을 잘하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다 - 중에서 가만, 뒤돌아 보면 나의 삶은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고, 만만한 적도 없었다. 늘 고단했고, 늘 치열했으며, 늘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투명한 순간들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단단했고, 늘 직진이었으며, 늘 그 중심만은 잃지 않은채로 흘러왔다. 가슴이 뛰지 않으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기에, 언제나 마음이 동할때에, 나의 몸도 움직였으며, 심장이 쿵쾅거릴 때에야, 나의 두뇌도 움직여 왔다.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좋기..
무서운 느낌이라는 것_ 대화를 하면서도 눈을 보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단순히 텍스트만 으로도 그 감정이 전달되는 것을 느낀다. 비지니스를 하면서 가장 중요시 했던 것은 관계였다. 그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나에게 1순위는 관계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죽쒀저 개 줬다"는 말은 꼭 내가 득을 보지 못했을 때 쓰는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떠한 이득을 취하지 못할 수는 있다. 그것은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관계를 종용해 취할 것 다 취했으니 "너는 됐고!" 라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면 그 관계는 볼장 다 본거라고 생각한다. 무슨일이야? 뜬금없이 하는 말은 아..
처음의 두 번째_ 무언가를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마음의 헛헛함과 공허함에 잠시 아슬함을 느꼈다. 나의 잘못도 누군가의 잘못도 아닐 것이다. 다만 각자의 살아온 삶의 방식이 다르고,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그리고 인생을 살아온 그 시간의 깊이 만큼, 서로가 만들어온 인생의 결이 다름으로 인해 찾아오는, 다소의 낯설음, 그것이 가져오는 두려움. 아마도 그런 것들이 아닐까.. 나의 바람은, 대단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으나. 어쩌면 가장 무거운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앞에 정직한자가 어디있겠냐만은, 그분 앞에 서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자기와 싸워나가는 치열함을 경험해본 자. 그래서 나의 연약함을 가감없이 털어낼 줄도 아는 용기있는 자. 그것이 나의 바람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다. 두번은 없던 내게 두..
(지극히 개인적인) 사진에 얽힌 이야기_ 뚜벅이면서도..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치이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오가면서도 가방에 꼭 넣어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 그렇게도 카메라가 내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함께 틈만나면 출사를 다니던 벗들과 자주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안녕을 묻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베프도 만났다. 사진과 글에 '홀려서' 카메라에 먼지를 불어내고 매일 같이 셔터를 눌러대던 그 시절... 그때를 추억하는 것이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하던 사진도 포토에세이 출간이 엎어졌던 2006년 무렵의 그 날들도 사진과 글에 깊은 감동을 받아 매료되었으나 눈부시던 사진은 얼마든지 의도로써 담아낼 수도 있는 정지된 순간일 뿐이며 흐드러지던 글 또한 치덕치덕 글 빨로 채워질 수 있는 텍스트 일 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