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성 목사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늘 이찬수 목사님 설교와 함께 빼놓지 않고 찾아 듣는다. 두 목사님의 말씀에 끌리는 것은, 뻔지르르한 말 뿐이 아니라, 철저하게 삶 속에서 분투하는 삶을 사시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으나, 말씀을 들어보면 그럴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유기성 목사님의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 동행하는 삶을 통해서, 그리고 영성 일기를 통해서 나 또한 삶의 많은 부분들이 다듬어졌고, 또 다듬어가고 있기에.. 이 책이 주는 깊이는 더 크다.
이미 목사님 설교를 통해 들었던 말씀들이지만, 책으로 보니 또 다른 은혜가 있다.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복음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님과 함께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변화된 삶을 살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변회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1부 말할 수 없는 죄인입니까?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01.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
(롬 1:1-17)
복음은 교리가 아니다.
복음은 절대로 죄를 용서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를 이기고 살게 되어져야 비로소 복음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복음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교리로 듣지 말고 주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예수 믿고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02. 알고도 짓는 죄
(롬 1:18-32)
복음이 기쁜 소식인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에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심판이고 파멸입니다.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부정하고자 하는 그 악한 의도가 무서운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은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누구의 통제도 받고 싶지 않아 합니다.
이익이 된다면 거짓말도 합니다. 그러니까 신뢰가 가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이 죄성이 무서운 것입니다. 알고도 짓는 죄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이요 멸망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알고도 부인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알고도 부인하는 죄가 그래서 무서운 죄입니다.
마음이 혼미해지면 분별하는 감각이 없어집니다.
어둠을 더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은밀하게 죄가 있다는 말입니다. 알면서도 짓는 죄이기에 부끄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아도 자기도 모르게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부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죄를 품으면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알고도 죄를 짓고 있다면 시급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무너져버립니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못하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조종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거부하면 하나님은 내버려두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따를지, 마귀를 택할지 선택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
시기, 분쟁, 수군거리는 자, 오만한 자, 자랑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신의가 없는 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
24시간 주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삶으로 증거할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드리십시오. 항상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을 통해 주님은 놀랍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03. 너, 남을 심판하는 자여!
(롬 2:1-11)
마음에 말씀이없으니 남을 심판하는 마음을 해결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판하는 죄, 판단하는 죄입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남을 가르치면서도, 왜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7)
보이지 않는 녹음기.
우리가 "이것은 잘못됐어!", "그건 죄야!"라고 한 말 그대로 우리가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사람을 용서하는 말을 하고 긍휼히 여기는 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입니다.
우선 나도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사람만 죄인이고 나는 의인이라는 태도를 갖는 것은 더 무서운 죄입니다. 우리는 죄지은 사람을 대할 때, 우리의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정죄하고 심판하지 말고 그가 스스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죄가 드러나면 꺾입니다. 이런 사람은 오히려 회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사람은 좀처럼 회개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분별하는 기준을 분명히 하시기 바립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믿었다면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열매 맺어야 진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한 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롬 2:6)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믿은 사람은 사랑의 열매가 맺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나무와 뿌리를 점검해야 합니다.
사람은 성숙하는 과정에서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 변합니다.
주님은 옳고 그른 것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는 마음은 의지나 결단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오래할수록 더 많이 판단하게 됩니다.
"방탕한 죄'보다 ;판단하는 죄'가 더 크다!"
04. 마음에 할례를 받으라!
(롬 2:12-29)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정말 두려운 일이 율법주의 신앙에 빠지는 것입니다.
율법주의 신앙이나 복음의 신앙이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신앙은 '감사'와 '사랑'이 초점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셨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지게'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할 것밖에 없고 사랑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떠나서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상에 절은 하지 않아도 그들의 마음의 욕심은 우상숭배자들과 똑같습니다. 권력욕, 소유욕, 명예욕, 지배욕, 쾌락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마음으로는 그들도 우상숭배자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 13:4)
하나님은 자랑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감사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타락한 이후에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의롭게 될 가능성이 사라졌습니다.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얼궁이 권위적이고 딱딱할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 복음은 우리를 감사와 사랑으로 살게 합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심으로 마음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롬2:29)
예수를 믿으면 우리 마음이 할례를 받습니다. 그 말은 성령께서 마음에 임하시고, 항상 성령을 의식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기븜이고 감사이고 사랑입니다. 성경은 이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율법주의 신앙에 바졌는지 아닌지 스스로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마음에 성령께서 임하신 것을 느끼는가", "마음이 부드러운가"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기쁨과 감사와 사랑이 있으면 은혜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오셨다면 주변 사람들이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기쁨과 감사와 사랑의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성령으로 마음에 할례가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주님으로, 왕으로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열심을 기준으로 신앙생황을 진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면 하나님을 믿고 싶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 신앙은 예외 없이 혐오스럽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는 커녕 그들을 볼 때 하나님이 싫어지게 만듭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내가 잘못했습니다"라는 고백을 잘 못합니다. 고백을 해도 꼭 토를 답니다. "나도 잘못했다. 그러나 너도 잘못했잖아!" 이렇게 말해서 더 상처를 줍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임재하신 증거가 사랑입니다. 우리가 진짜 예수를 잘 믿으면 사랑으로 수문이 나야합니다.
열심이 아닌 사랑으로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사랑으로 소문나면서도 얼마든지 옳고 그른 것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고 정죄해서 죄를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사랑만이 죄를 그치게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말과 행동에 가시가 돋쳐있습니다. 그 가시는 가까운 사람들이 압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 사람이 변합니다. 가시가 없어집니다. 가까운 사람이 그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지만 감사와 사랑조차 노력으로 하려고 하는 함정에 빠지지는 마십시오. 그것은 또 다른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입니다.
감사와 사랑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성령께서 마음에 계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주실 주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감사와 사랑만 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예수 믿는 것이 좋구나",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좋은 분이구나"라는 말을 듣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감사하고 사랑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저 우리 안에 성령님이 와 계신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분을 늘 의식하세요. 항상 주님을 바라보세요. 주님이 주신 마음이면 꼭 순종하세요.
05. 정말 의인은 하나도 없을까?
(롬 3:1-20)
로마서 3장 10절에서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교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은혜롭습니다.
성경은 죄의 양으로 사람을 분류하지 않습니다.
죄를 많이 지은 죄인이든 죄를 거의 짓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죄인이든, 죄인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죄의 열매를 많이 맺었는지를 따지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내쫓은 죄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비록 작은 영역 같아도 하나의 왕국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이 왕 되심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의 마음의 본성입니다.
죄는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왕으로 계시는 것이 싫고 부담스러워서 하나님 없이 살려는 것, 마음대로 살고 싶은 욕망이 죄의 실상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사람은 결국 갈 데가 지옥밖에 없습니다. 죄의 열매가 많든 적든 상관없습니다.
네 마음의 주인이 누구냐?
마음의 왕이 예수님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의 마음을 뒤바꾸지 못합니다. 율법은 단지 우리가 죄인임을 드러내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 자체가 지옥입니다.
윤리적인 죄보다 더 큰 죄가 영적인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만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아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는 끔찍한 죄를 짓고 살면서도 자신이 지옥에 갈 죄인인 것을 모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우쳐줄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셔야 합니다.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깨달았다면 그것은 기적입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뜨여야 합니다.
"나는 지옥에 갈 죄인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싫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왕이 되시는 것이 부담스럽고 하나님이 안 보시는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나를 끝까지 찾아오셨습니다. 내 마음을 두드리시고 내 안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삶입니다.
2부 의롭게 되었습니까?
06. 정말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될까?
(롬 3:21-31)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죄인인 우리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차별한다면 그 자체가 죄입니다.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주으셨으면 죄인인 우리도 죽은 것입니다. 이것을 믿을 때 우리는 모든 죄에서 사함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의로움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율법생활과 은혜생활의 대표적인 차이가 자랑하는 것입니다.
믿음 따로 예수님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마치 믿음이 자신을 구원해주는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강조하는 극단이 구원파 이단입니다. 믿음이란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분리된 믿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아는 것과 실제로 믿는 것은 다릅니다.
예수를 주님이라 믿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정말 죽을 각오가 되었습니까? 믿는다는 것은 이처럼 삶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belive in
믿는 대상인 예수님께 내 삶 전체를 맡기는 것입니다.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마음에 주님으로 영접하고, 내 인생의 왕으로 모시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구원받는 믿음은 반드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증명됩니다.
지적으로 동의하는 믿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순종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믿음은 예수님과 우리를 온전히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기 때문입니다.
믿으면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유는오직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께 걱정과 근심을 모두 맡기는 것입니다.
07. 믿음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롬 4:1-25)
믿음은 단순히 의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열쇠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계시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항상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말도 안 되는 그 약속이 믿어진 것입니다.
친밀함에서 믿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게로 자꾸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삶에 나타나는 가장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08. 하나님 사랑, 정말 믿습니까?
(롬 5:1-11)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면 사람이 반드시 변하고 삶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면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눈이 열립니다. 그것은 '영광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자랑하게 됩니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먼저 기도합니다.
환난도 자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그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어지는 과정에서 내게 환난이 주어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환난이 기쁨이고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환난을 자랑하십니까?"
이것이 구원받은 믿음을 가졌다는 증거입니다. 자랑거리가 바귄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환난을 주신다면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보증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의 큰 특징 중에 하나가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혹시 어떻게 해서든지 잘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 믿어지면 삭개오처럼 모든 재산을 다 나눠주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임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믿는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성령님, 저의 눈을 여셔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교리로만 알면 안 됩니다.
09. 간증 중의 간증
(롬 5:12-21)
간증 중의 간증은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감격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고백을 스스럼없이 합니다. 문제는 그 고백에 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아는 것은 마귀가 하나님을 아는 방식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분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마귀는 모든 것을 미워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새로운 은혜와 복은 없습니다. 십자가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십자가면 충분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를 은혜로 깨닫는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더 많은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를 깨닫는 눈이 뜨여야 합니다.
3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10. 나도 죽은 십자가
(롬 6:1-14)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는 길은 오직 죽는 것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나도 죽은' 십자가입니다.
"내가 그리스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옛사람의 죽음은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11. 순종이 없는 믿음은 없다
(롬 6:15-23)
예수님을 믿기로 한 것 자체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되 잘 믿어야 합니다.
죄와 싸우지 않습니다. 죄를 안 짓고 살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죄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의롭게' 살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랑하며' 살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 죄를 뒤치다꺼리해주는 그런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가 죄의 종이 되면 죽음에 이르고, 우리가 순종의 종이 되면 의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의로우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열쇠는 전적으로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더러움과 불법에 몸을 맡기는 것도 우리가 하고, 의의 성령께 자신을 바치는 것도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불법의 종이 되느냐, 의의 종이 되느냐 하는 열쇠는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에게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 84:5)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고 하나님의 종이 되고 싶은 사람에게 그 길은 시온의 대로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삶의 네 단계
1. 죄에서 해방
2.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
3.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는 것
4. 영원한 생명
우리가 죄에서 해방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사이에,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의 종이라고 고백하면 그때부터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무엇이 진정한 행복일까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수고했다, 내 종아"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종이 없는 믿음은 없습니다. 그것은 거짓 믿음입니다.
12.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롬 7:1-6)
핵심은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성령님ㅁ은 우리 안에 새 생각을 넣어주십니다.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생각을 품고는 주님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13. 죄를 깨닫는 것이 큰 은혜입니다
(롬 7:7-14)
살았던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무엇이 달라진 것입니까? 바로 영혼이 육신을 떠나 하나님께로 간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시신이 중요합니까? 그 영혼이 중요합니까?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죄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병든 사람은 죄에 대한 감각이 죽은 사람입니다.
죄는 큰 죄, 작은 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율법에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습니다.
율법은 바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햄항이니라"(롬2:1)
염려가 죄인지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마귀는 죄의 감각을 죽여서 우리가 죄를 짓고도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게 만듭니다.
죄를 짓고도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든다는 것이 바로 죄인의 실상입니다.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죄가 나쁜 것입니다.
죄가 나에게 고통이 되어야 하는데, 죄가 나의 즐거움이 되면 심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종노릇하는 사람의 실상입니다.
자신의 죄 문제를 알게 되고 죄에 대한 합당한 회개가 터질 때 그는 삽니다. 그러나 죄에 대해 무감각하면 그는 죽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회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14. 절망하는 자, 예수께로 오라!
(롬 7:15-25)
우리가 죄를 지었다는 것보다 더 조심할 것은 그 죄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핵심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 에수님은 우리가 죄짓고 탄식만 하고 있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능히 죄에서 건져내시고 죄에서 지키시는 분입니다. 친히우리 안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우리를 죄에서 이기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결국 인생은 우리의 마음에 따라 결정됩니다.
마음의 열쇠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법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사로잡으십니다.
"힘들다", "괴롭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죄와 전쟁하게 된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 전에는 싸우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지키시기에 마귀는 우리를 만지지도 못합니다.
죄에 대해 갈등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말입니다.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주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셨음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24시간 주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4부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드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15. 이런 행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롬 8:1-13)
로마서 8장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롬 8:1)
물론 예수 믿는 사람도 죄를 짓습니다. 여전히 육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죄를 이겨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상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를 이끄신다는 것이 드러나야 합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정죄받지 않는 은혜에는 반드시 성령님의 함께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성령과 상관없이 살도록 만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잊게 만들고, 믿지 못하게 만들고,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죄를 용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지으면 징계가 있습니다.
생각은 정말 중요합니다. 사람은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에 인생이 달라지고, 생각이 바뀌지 않으니까 삶이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성령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성령에 속한 생각을 주심으로써 우리의 길을 이끄십니다.
정죄받지 않는 은혜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허락된 은혜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을 깨달았어. 그것은 내가 어떤 좋은 일을 했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오셔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하셨다는 사실이야. 나에게 좋은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나는 그것이 성령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았어.... 나는 그저 그분이 하시는 일에 감사하고, 놀라고, 기대할 뿐이야"
좋은 사람에서 놀라운 사람으로 변화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 그치면 안됩니다. '놀라운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6. 아버지, 나의 하나님!
(롬 8:14-17)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엄청난 권세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친밀함이 생깁니다. 성령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담대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게 해주시는 영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
17. 주의 날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소서
(롬 8:18:25)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야 우리가 자녀처럼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광야에서는 축복을 구하지 않고 은헤를 구하게 됩니다.
18.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
(롬 8:26-28)
그리스도인들을 든든히 도우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마음에 임하신 성령님이십니다.
1.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말씀은 성령께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형편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모른 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알야야 할 것들을 모르고 삽니다.
주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보십시오.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너무 모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제대로 기도해야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2. 우리 마음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마음이 완전히 통하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생각만 해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욕하고 화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 마음의 묵상이 하나님께 그대로 올라간다는 것을 믿고, 하니님이 우리의 마음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항상 주님께 시선을 고정한 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각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모든 일이 협력하여 결국 선을 이루게 됩니다.
아무리 약해도, 실패해도,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존재한다"
그는 성경 말씀대로 회사를 경영했는데도 성공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고 실패하고 형편이 어려워도괜찮습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성령을 모시고 사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
겨자씨만큼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기적입니다. 성령의 역사요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19. 끊을 수 없는 사랑
(롬 8:29-39)
구원의 과정을 다섯 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미리 아신 것입니다.
2. 이미 정하신 것입니다.
3. 부르신 것입니다.
4. 의롭게 하신 것입니다.
5.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미리 아시고,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게 하셨습니다.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과거형
우리는 이미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위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그 사랑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 안에 주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로 인해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은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끈을 놓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임하신 주님을 알고 나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우리의 고난이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고난이 축복이라고 느껴집니다.
우리가 가정과 일터와 세상을 변화시키기 원한다면 그전에 우리가 먼저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등지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등지고 있어서 우리 삶에 그림자만 드리워지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빛이신 주님을 향해 돌아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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