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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IO_/CoffeeTime_

마스터 쉐프 이희준

소리를 요리하는 마스터 쉐프 이희준 감독

봄인가 싶었는데, 너무 우습게 봤다. 님은 온듯 저멀리서 살랑거릴 짙은 밤이 찾오면 그새 어디론가 줄행랑을 치고 사라져 버렸다. 대낮의 뜨거운 햇살이 오래전 처마 밑자락의 아지랑이를 초대하지만 그도 잠시 곧장 그림자를 두리우며 서린 기운을 내뿜는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정말 때가 된건지는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대낮의 태양은 몹시도 정직하고 기운 또한 정직하다. 봄이라고 속였던 어쩌면 스스로였나 보다.

어느 봄날, 이즈음이었을까, 느즈막히 연락을 받고 배낭을 맨체로 그렇게 만났었다. 공연을 보자며 갑작스레 연락을 했던 그는 나에게 친절했으나 시니컬함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예쁘게 담긴 요리에 고급스러운 데코레이션을 해놓은 장식품 같았다. 그는 요리를 좋아한다. ..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다. 좋아했었다. 과거형이다. 적어도 오래 전에는 그랬었던 걸로 알고 있다. 쉐프의 삶도 잠시 살았던 같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요리를 한다. 도마위에 야채를 올리고, 생선 가시를 다듬거나 고기를 연하게 두드리는 대신 믹서 위에 갖은 소스를 얹어 소리를 요리한다. 그렇게 그의 모습을 보아온지도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같다.

처음 만났을 무렵, 지인의 소개였던가.. 아니면 우연한 자리였던가.. 어떤 모임이었던가.. 사실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어쨌든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봐 왔던 같다. 키에 곱상한 얼굴, 살빠진 영화배우 곽도원과 비슷한 이목구비이지만 내가 볼때엔 배우 곽도원보다 훨씬 생겼다. 음향 업계에서 손에 꼽힐만한 마스크의 소유자인 것만은 사실이다. 문득 생각한다. 만약 콘솔 대신 도마를 계속 잡고 있었더라면 요즘 한창 뜨고 있는 꽃쉐프 어쩌구 하는 프로에 나왔겠지.. 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살짝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때면 확그냥 막그냥 그런건 어따쓰게 물어? 라고 되묻고 싶지만, 그의 물음안에는 철학스러움이 담겨져 있다. 어디서 도를 닦다가 내려온 사람 같은 생각도 든다. 온화한 미소는 입에 달고 살아가지만 언젠가 온화함속에서 매서운 질문들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같다. 완벽한 이해 없이 다음 스텝이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에겐 몹시도 피곤할 때가 있다. 모르는걸 자꾸 물어볼 때가 그렇다. 하지만 그마저도 유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함께 있으면 도전을 받게 된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동안 많이 놀았구나!’ ‘공부해야겠다!’ 하고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도 소유하고 있다. 그는 무언가에 심취하면 중독에 가깝게 우물을 파는 경향이 있는 같다. 가끔 도면읽는 법이나, 설계 혹은 관련 고난이도의 질문들을 한데 모아 물어볼 때가 있는데 그럴 보면 영락없는 멋진 엔지니어의 모습이다.

근데 잘난 사람이 누구냐고? 남동문화예술회관 음향감독 이희준이다. 이희준 감독을 가장 쉽게 있는 곳은 공부하는 장소이다. 어디든 공부하는 자리에는 빠지지 않는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본다는 의미이며, 자신을 보살필줄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좋은 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쉐프의 모습 그대로 재료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며 도구 하나하나 조심스레 다뤄가며 최고의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희준 감독. 멋진 외모만큼이나 매너 있는 스마트함이 멋진 중년의 마스터 쉐프처럼 정말멋있는 엔지니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맛있는 테이블을 선사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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