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지 히토나리의 이야기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참 재미있다. 공지영 작가의 문체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책에서의 그 흐름은.. 참 달콤하다. 달달함이 가득한데다가 공지영 답지 않게 해피앤딩이다. 베니도 나같은 여자였던 것 같다. 총명하진 못한 것이다. 약지 못하고 그저 감정에 충실한 그런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베니는 준고를 만났다. 함께 호수를 뛰었다. 15년간 그녀 곁에서 해바라기 하던 민준은 그렇게 미국으로 떠났다. 너무나도 착해서, 너무나도 사랑해서 도무지 그녀에게 나빠지지 못하는 그 한사람의 가슴에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 남자의 그 마음이 찌릿하게 여운이 남는다. 이 소설.. 참 좋다.
[밑줄긋기]
헤어짐이 슬픈 건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만남의 가치를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쉬운 이유는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그 빈자리 속에서 비로소 빛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도 슬픈 건 사랑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알게 되기 때문에.
"그러니까 네가 뛰쳐나올 때 남자가 너를 잡지 않았다면, 그는 너하고 그만 끝내고 싶었던 거야. 아니라면 남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지구 끝까지 쫓아서라도 붙잡고 말테니까
.. 게다가 너는 여자가 필수적으로 해야하만 하는 일, 그러니까 적당히 튀기는 일을 하지 않았거든."
"혹시 사람에겐 일생동안 쏟을 수 있는 사랑의 양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 난 그걸 그 사람한테 다 쏟아버린 것 같아......, 그리고 내 표정이 아무리 이상해져도 앞으로도 늘 이렇게 말해줘.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해줘. 부탁이야!"
"미안하다고 한마디하면 되잖아!"
날 붙들어줘, 라는 호소 였을까. 그래, 그랬을 것이다.
"괜찮지 않아요. 아파요...... 많이 아파요."
"여자들은 말이야, 너무 매사를 사랑에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어. 사랑에 집착하는 순간, 거기에 모든 걸 거는 순간, 남자는 떠나가는 거야. 남자의 본성은 사냥꾼이거든. 잡아 놓은 짐승보다는 아슬아슬하게 도망 다니는 언덕 위의 날랜 사슴을 쫓아가고 싶어하거든. 우리 여자들이 할 일은 그들의 그런 본성을 인정하고 쿨해지는 거야. 그래야 남자들의 사냥 본능을 만족시킬 수 있거든"
나 아직 사는 게 뭔지 사랑이 뭔지 잘 모르지만, 해놓고 하는 후회보다 하지 못해서 하는 후회가 더 크대."
"왜 말로 표현하지 않아? 왜 그렇게 아무런 대꾸가 없느냐고?"
나는 물었다.
"그냥 나는 말로 표현하는 게 힘들 뿐이야.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거라고"
헐거운 청바지를 입고 준고는 씨익 웃었다. 나는 입을 내밀며 언제 쓸건대, 라고 물었었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그냥 그였다.
"괜찮아?"
"안 괜찮아, 그렇게 오래 하는 법이 어딨어? 입술이 좀 아파."
내가 타박을 주자 준고는 미안, 하더니 어디 입술 다쳤나 보자, 하며 다시 나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 오래오래 내게 입을 맞추었다. 그때 우리가 칠 년 후 이렇게 어이없이 이렇게 슬픈 눈빛으로 서로를 찾아와서, 다시는 떨어지지 않고 싶어하던 그 입술로 서로를 상처 입히고 상처 입으며 이렇게 마주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아무것도 내색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하지 못한 채로 이렇게 추억이 날뛰는 날, 마음은 여기저기 피를 흘리는 것만 같았다.
"괜찮아. 넌 늘 늦잖아. 그래도 오는걸. 결국 내게로 말이야."
사랑을 하면 길거리를 걷다가 우두커니 서서, 앞서 걸어가는 다른 사람을 쳐다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는 건데, 그 사람 지금 여기 있었으면 참 좋겠다 하고. 나로 하여금 그렇게 걸어가다가 우두커니 서 있게 한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행복하지 마! 준고. 나랑 함께였을 때보다는 행복하지 마!'
하지만 그가 알까. 우리라는 그 말의 의미를?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아이들 그리고 우리 남편, 우리 아내의 우리라는 말은 이미 네 속에 내가 들어 있고 내 속에 네가 들어 있다는 뜻임을. 관계를 맺으면 나조차 네가 되고자 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그리고 그것이 그를 향한 내 마음이었다는 것을. 처음부터 속수무책으로 그랬다는 것을.
하지만 때로 진실은 이렇게 난데없는 곳에서 암초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기도 한 것이다.
우린 서로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말을 해놓고 보니 그것조차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한다고, 겁도 없이 나는 그에게 말했었는데 그는 그 말을 쓰지 않았다. 나 혼자서만 그에게 사랑해, 사랑해, 하다가 내 입마저 다물어졌던 것이다.
'나는 네게 대체 뭐니?'
준고는 약속을 그렇게 허투루 어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뒤에 순간이었지만 만일 그런 사람이 약속을 어긴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나를 바라만 보았더라면, 그가 내 손을 잡아만 주었더라면 모든 일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하지만 많이 안다고 많이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처럼 나는 또 그에게 야단을 맞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늘 어른스러웠고 그래서 나는 늘 철부지 같았다.
우리는 오랜 길을 돌아왔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반추의 길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만났고 그러니까 나는 이제 그를 더 사랑해도 괜찮은 것이다.
세월이라는 것이 꼭 좋은 것인지 아직은 잘 알수가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오래도록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라는 것만큼 순수한 감정이 있을까, 하고 실은 생각해 왔더랬습니다.
세상에 사랑은 한 번일 뿐, 나머지는 모두 방황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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