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의 지도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것을 잠시 잊었다.
세상의 모든 도시는 손가락에 새겨진 지문처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도의 모든 그림과 글자들을 지우고 그물처럼 얽힌 길만 남겨놓으면
그 도시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발견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PROLOGUE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일상에 대고 리모컨을 눌러 문득 다른 채널로 옮기듯이
갑작스럽게 어디론가 떠나는 걸 좋아했다.
그 언가가 조금은 익숙한 곳이든, 아예 낯선 곳이든 상관없이
가끔씩은 머리 위 하늘을 바꿔 잠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낯선 도시가 간직하고 있는 은밀한 사연들을
엿보거나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물론 세상은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하라고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게다가 좋아하는 일 역시 나름대로의 고통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다른 것들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많을 거라고 애써 자위한 뒤,
일단 나는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도시들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서울, 일상의 도시 1]
마치 표지판들이 모두 증발해버린 고속도로처럼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만큼 왔는지 전혀 모르는 채
모두들 그저 달리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을 옥죄는 고통의 실체를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곳은 마치 유토피아의 정반대에 위치한 세상 같았다.
주말에 티브이를 시청할 때만 제외하곤 모두들 웃지 않았다.
[욕망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More is not Less _Robert Venturi
인생은 소심한 도박
다들 대범한 척 하는 것일 뿐
욕망 (명)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유럽의 옛건물들 창이 좁고 긴 것은 벽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 호텔의 창이 좁고 긴 것은 그냥 그런 모양의 껍데기를 붙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결정이 그러하듯, 모니터 앞에서 충동적으로 선택한 곳이다.
며칠도 채 머물지 않을 거면서 아파트 동호수 추첨을 받는 사람마냥 좋은 층에 전망이 괜찮은 곳을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호텔방의 침대 위에는
사랑과 증오가 어려 있었다.
거기에 고독을 더하며 몸을 던져 누웠다.
호텔방은 궁극적으로 외롭다.
잠시 머묾이란 그런 것이다.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아릿한 아픔을 남긴 짧은 순간의 인연처럼
행복도 고통도 영원하지 않았다.
외로움은 기대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즐거웠는데
사실 딱 그만큼 힘들어하고 있었다.
냉정하게 보면 그 욕망은 나의 역량을 어느 정도 넘어선 곳에 위치해 있었다.
기대치를 줄이고 실력을 늘리면 고통을 줄일 수 있었다.
물론 기대는 쉽사리 접을 수 없고, 실력은 늘리기가 더더욱 힘들다.
내 욕망은 스스로를 외롭게 했다.
"솔직한 게 제일 좋아. 그걸 남들이 싫어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혼자서 바로크 양식의 껍질 뒤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을
실내를 쾌적하게 하기 위한 거대한 기계조직 같은 것들을 상상하며
홀로 버려진 아웃사이더처럼 시간을 보냈다.
환상은 대게 진부하지만
세상은 보다 진부하다.
그러니까
쿨하지 않게 보일까봐 걱정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스페인어로 비옥한 땅이라는 뜻의 라스베이거스
사막을 달려 폐허를 만났다.
황폐함 그 자체가 목적인 장소.
인생의 지루함을 마음껏 즐기고 있던 가게의 여주인
노골적인 상징은 목적에 집착한다.
상징은 인간을 위한다는 근대 건축이 정작 잃고 있었던 인간성의 영역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것은 고귀함과는 거리가 먼 즉흥적이고 직설적인 감성들이다.
상징이 공간을 지배한다. 건축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간 간의 관계라는 것은 형태보다는 상징에 의하여 맺어지기 때문에, 풍경 속에서의 건축은 형태보다는 상징으로 장소를 규정한다.
정면의 거대한 간판은 자극적인 유희가 되고, 뒤쪽의 건물은 얌전한 필수품이 된다.
몸집을 커다랗게 불린 라스베이거스는 자신감이 넘친다.
일상을 잊게 만드는 초현실성을 앞세우며 도도한 자세를 취한다.
비굴함을 익숙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잠시 떠나온 신분의 나로서는 이 도시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욕망의 크기는 문제가 아니다.
그냥 각자의 욕망이 다르기에
종종 서로 충돌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누군가가 의지할 것은
결국 자신의 욕망밖에 없었다.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도시.
그곳은 낯설다.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은 천국처럼 낯설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이를 수 없는 위치에 대해 욕심을 내지만, 다행히도 한계를 넘지 않는 방법을 안다.
본능적으로 대부분의 이들이 좋은 직장에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가끔 여행을 떠나 일상을 탈출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산다.
말투는 어눌한 데다가 뇌의 용량 부족으로 말을 하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종종 까먹고,
소심해서 억울한 일이나 실수한 일을 쉽게 잊지 못하고,
자세가 좋지 못해 거북이 목을 하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일이 다반사고,
입이 싸고,
코를 골고,
피부가 너무 허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과잉상태인 자의식 하나를 믿고
꿋꿋이 버텨가며 살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그건 나의 장점 중 하나인
나의 약점을 쉽게 망각하는 천부적인 재능 덕분일 테다.
많은 화가들이 그림으로 그렸던 천국의 모습은 사실 현대인들에게는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일탈의 도시 찬디가르]
Architecture is the masterly, correct, and magnificent play of form in light._Le Corbusier
일탈(명)1. 정하여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남. 2. <사회> 사회적인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일탈은 자기애에서 비롯된다.
일상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거나
혹은 목표를 향해가는 길을 잃고 잠시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면
일탈의 감행을 고려해볼 만하다.
자기애가 결핍된 돌출행동은 단지 현재의 부정일 뿐이다.
일탈은 나름대로 미래지향적 자의식 발현이다.
뭐든 명확한 게 좋을 수 있다.
무의식은 나를 강하게 옥죄었다.
아마 그것은 내 욕망에 대한 대가였을 것이다.
오래된 것은 쉽게 무너져선 안 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란 있을 거라고 속여가면서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성을 쌓는다.
전복시킬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이 지금의 세상을 비참하게 만든다.
일탈은 일상의 질서에 의해 규정된다.
질서를 굴레라고 치자면
나는 발목에 족쇄를 한 다스 정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줄곧 일탈을 꿈꿨나보다.
세상은 먼저 걱정해주는 사람들에 의해 나름대로 편하게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더 느긋할 수 있는지가 인생의 피곤함을 결정한다.
내가 피곤한 것은 결국 나 때문이다.
"인연은 문득 오는 거야."
인연을 만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했다.
그리고선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내곤 했다.
일탈은 복제되지 않아야 한다.
복제되고 재생산되는 순간
일탈만이 줄 수 있는 그 미묘한 긴장감은 사라져버린다.
그건 마치 동일한 내용으로
반 아이들의 절반에게 수여하는 상장하는 것이다.
사고도 기왕이면 제대로 쳐야 한다.
평생 한 가지를 이렇게 이룰 수 있다면 진정 나쁘지 않은 일이겠지만, 나는 그러기엔 욕심이 너무 많다. 한 가지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지 모르는 덧없는 판타지에 나는 아직 매몰되어 있었다.
무언가 있어야 할 것 같은 할 말을 잊게 만드는 도시
그 뒤에서 허덕이는 힘을 잃어버린 대국의 가쁜 호흡
나는 차라리 이곳에 내 잃어버린 기억들을 묻는다.
누군가 내게 물었었다.
"꿈이 뭔가요?"
요즘은 꿈과 환상과 목표가 종종 뒤섞인다.
조금 모자란 듯 아쉬워야 제맛인 것이다.
원래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무수한 비판들에서 벗어나기 힘든 법이다.
생각은 스스로에 대한 애정에 의해 능동적으로 진화한다. 그건 변절과는 다른 것이다.
그의 일탈은 경이로웠다.
짧은 여행이 해결해주는 건 많지 않다.
추억이 남는다고는 하지만 일상의 힘이 너무 강하기에 곧 묻혀버린다.
여행 중의 단상들은 마치 지난밤 꾸었던 두 번째 꿈처럼 희미한 기억으로 흩뿌려지게 된다.
[위안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There is nothing finer than Nevsky Prospect, not in St Petersburg at any rate; for in St Petersburg it is everything. And indeed, is there anything more gay, more brilliant, more resplendent than this beautiful street of our capital?"_Nikolai Gogol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보세요. 우와, 그곳을 좋아할 거예요."
위안(명) 위로하여 마음을 편하게 함. 또는 그렇게 하여 주는 대상.
나는 세상의 잘하는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체념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동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
크기는 문제가 아니라고 수많은 조언자들이 위로를 하더라도
결국 그 '크기'가 사람들을 자신만만하게 하거나 위축되게 만들고는 한다.
마음이란 그리 쉽게 설득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자신의 능력보다 과대 포장된 평가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걱정하는 모임에 참여하려고 했다.
다만 세상에는 그런 모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간혹 세상의 소식들을 접하면서 위안을 삼고는 한다.
"저 사람이 나보다 더 힘들겠구나."
나는 적어도
챔피언 결정전에서 역전 만루 홈런을 맞은 마무리 투수는 아닌 것이다.
벌어지는 사건의 종류만 다를 뿐
나를 비롯한 또래들의 삶은 비슷한 편이었다.
기쁜 순간이 잠시 있고
슬픈 순간은 가끔 있고
우울한 순간은 자주 있고
힘든 순간은,
순간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다른 언어가 필요할 것 같은, 가령 '날'이나 '시기'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시간들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삼십 대 중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위로라는 게 그리 필요가 없었는데
위로를 받는다고 상황이 괜찮아질 리가 전혀 없다는 게 한 가지 이유였고,
사실 위로를 한답시고 말을 꺼내는 사람이 실은 더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던 경ㅇ가 많았던 게 또 다른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서로를 위로했다.
나는 경험한 적 없는 경ㄹ의 페테르부르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는 저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애석하게도
인생의 진부한 교훈들은
대개 맞아떨어졌다.
"누구나 길을 잃을 수 있으니깐."
조바심이 밀려왔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지나는 행인에게 길을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같은 도시 안이었기 때문에
조금 다리가 아프게 발품을 팔면 결국 호텔에 이르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겨우 방에 이르게 되었을 때 한숨을 크게 쉬면 되는 일이었다.
페테르부르크에는 네프스키 거리보다 더 나은 곳이 없다.
세상에 완벽한 위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위로란 정열적인 사랑고백처럼 잠시 자신을 속이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속는 줄 알면서도 가끔은 모른 척 넘어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기에 사람들은 지치지 않고 새로운 사연들을 만들어 간다.
이 네프스키 거리라는 건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사실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때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그건 그냥 묵묵히 혼자서 어떻게든 견뎌내야 하는 종류의 과정이다.
다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어느 순간 내가 겁이 늘었다고 느꼈을 때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다.
무서워하지 말고 자신을 믿으며 계속 가보라고.
세상에서 가장 척박하고 고독한 땅에 일구어낸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보라면서.
같이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충분히 만족했다.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세상을 여유롭게 사는 방법을 깨달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닥친 현실은 적잖이 쓰라렸고,
오히려 난 과거에 비해 작은 상처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교훈들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이미 우리 사회는 성공한 사람들과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많은 이들은 그들의 남루한 인생에서 탈출하기 위해
줄곧 새로운 교훈들을 찾았다.
물론 잠시 감동하고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다.
교훈을 머리에만 새긴 채 채워지지 않는 마음과 함께
나는 잠시 내가 좋아하는 도시들로 여행을 떠났다.
잊지 못할 스승처럼,
영원히 기억에 남는 은인처럼,
내겐 고마운 도시들이 존재했다.
지도에 그려진 선들을 직접 밟고 다니며
궁극적으로 찾고 싶었던 건 작은 용기였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거라고,
혹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틀리면 또 어떠냐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지나간 시간의 흔적과 상처들이
도시의 구석구석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사랑하게 된 사람의 오랜 습관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 나름대로의 모습들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