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소개로 읽게 된 책. 책 표지가 너무 강력해서, 필체도 너무 강력해서 사실 첫 페이지를 열기 전부터 좀 쫄았다! ㅋ
무슨 신앙서적이 이렇게 쎈거야??? 하면서... 그런데 이 책을 읽어가면서 고개가 끄덕여 졌다.
참 좋은 책, 유익한 책, 그리고 지금 나의 인생의 여정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필요한 책. 잘 만났다!!!
1부 매력있는 그리스도인, 매력있는 기독교
01.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라
신의 삶과 영광을 공유하는 것.
기독교는 매력을 잃었는가?
"이것은 참으로 달려 볼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경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그토록 영광스러운 일임에도,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정신을 잃을 때가 많다.
아름다운 싸움?
진정한 변화와 희생적인 섬김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드라마틱한 반전과 열정과 씨름과 비전(영혼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거룩한 사람이란 무엇인가?
도덕을 유난히 강조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그들이 너무 멀리 간 것이 아니라 충분히 가지 않는 데 있다. 그들은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한다.
성육신 영성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느끼고, 세로워진 귀로 듣고, 새로운 열정으로 사는 사람이다. 이것이야 말로 참으로 살아볼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삶이라고 나는 믿는다.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보게 되기를 기도한다. 당신의 손과 발을 능하신 창조주의 거룩한 도구로 보게 되며, 당신의 귀는 하나님의 지시에 늘 주파수가 맞추어져 있도록 드리게 될 것이다. 당신의 심장은 하나님의 열정으로 뛰고 당신의 머리는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여정에 오를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영광을 물벼락을 씌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시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자기 형상대로 만드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형상을 되찾기를 원하시며,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분의 일에 복종하기를 원하신다.
영광을 회복하라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하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충성만이 아닌 존재의 변화, 고백만이 아닌 체혐의 변화, 신봉만이 아닌 실존의 변화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우리의 영광의 회복이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되기 원한다.
02. 체험 신앙의 길로 들어서라
우리를 그분처럼 되기 헤려고 그분이 우리처럼 되셨다 - 아타나시우스
기도하며 그 진리를 확증하게 한다해도 프란시스처럼 적용할 길을 찾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싸움에 실제로 참여하려면 실천할 길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역동적인 임재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면 엄밀히 말해서 우리는 불경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흔히 '불경함'이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단순히 하나님을 무시하는 삶이나 단순히(바쁨, 무관심, 종교생활, 냉담함 때문에) 하나님과 소통하지 않는 삶도 불경함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을 닮은 특성은 결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이루시는 연합'의 열매다.
더 깊이 갈망하라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것이다.
매력있는 그리스도인
하나님과의 서먹서먹한 관계를 문화와 친구가 됨으로써 보완할 수는 없다. 오히려 하나님을 더 의식하게 될 떄 우리는 문화의 가장 참된 친구가 된다.
매력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 내맡겨진 삶, 하나님의 교제와 임재와 능력을 꾸준히 체험하는 삶이다. 여기에는 대용품도 없고 지름길도 없다. 본래 우리는 매력이 없다.
사람들이 관심을 느끼는 대상은 우리라기보다 우리의 뭔가 다른 점이다.
체험 신앙은 필수다
체험적인 기독교는 인간의 갈망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갈망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열망하시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고귀한 소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통하여 그분의 임재를 나타내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험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누구와도 변론이나 입씨름 없이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는 것'
진리와 거룩함은 오류와 불의를 퇴치하는 가장 확실한 답니다.
기적처럼 신기한 성령의 나타나심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체험 신앙은 필수다.
'성령을 나타내심'
훨씬 넓은 의미에서 이 말은 우리가 성령의 전으로 부름 받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03. 지금도 살아 계신 역동적인 임재에 힘입으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핵심이자 중추적 실체로 보아야 한다. 여태까지 모든 삶과 역사는 그분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 H.R매킨토시
그리스도는 몸으로 승천하셨다
그분이 다스리신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라
하나님의 한 '조각'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하신다.
우리는 내 일, 내 영향력, 내 사역에 집중한다. 성육신의 삶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 중의 하나는 교만이다.
예수님이 오늘, 바로 지금 활동 중이시라면 무엇보다 나는 매순간 그분의 영향력에 복종해야 한다.
"오늘 저를 주님의 종으로 바치오니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저를 통하여 당신을 나타내소서"
"아버지, 이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도와주소서"
"아버지, 이 사람이 정말 하려고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아버지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눅8:46)
나 자신을 내드리면 하나님이 별것 아닌 듯한 것으로 아주 많은 일을 하시는 것을 본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지금도 다스리신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에 대한 이런 복종적이고 의존적인 시각은 우리의 역할이나 우리가 할 일의 중요성을 축소시키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를 높여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그분은 연약하되 승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의 영광은 용서받은 사람들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매력 있게 변화된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난다.
바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 열심히 일하시며 많은(물론 때로 기적적인)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것이다.
당신의 표시는 나의 표시와 다르게 보이겠지만 둘다 세상에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살아서 통치하시는 주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면서 우리는 매일, 매주, 매년 능동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지금도 다스리신다.
우리의 가장 높은 희망
아름다운 싸움은 끊임없는 실패처럼 보이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거기로 올라가 우리를 위해 하늘에 게시니 우리는 이 세상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주지하자.
나는 비록 약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그 크신 능력으로 바로 설 수 있다. 나는 비록 힘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힘이시다.
예수께서 지금 다스리고 계시기에 우리는 희망이 있다.
예수님은 그냥 나를 지켜보시며 그분을 닮으라고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처럼 보고 말할 수 있도록 나를 도우시고자 성령을 보내셨고 지금도 보내고 계시며 앞으로도 보내실 것이다. 그분이 나를 통해 사신다.
자존심, 우쭐대는 마음, 교만한 생각일랑 다 버리자. 정신없는 활동과 최신 테크닉들로 스스로 커지기에 급급한 사람들의 자잘한 삶도 거부하자. 우리 마음을 오랫동안 고요히 가라앉혀 예수님의 열정(평온하고, 놀랍도록 강하며, 마음이 끌리도록 순결한 그 열정)을 체험하자.
04. 싶은 변화로 나아가라
깊은 변화로 나아가라
이사야와 에스겔은 예언했고 예수님은 성취하셨고 바울은 전했다.
'영적 에배'는 찬송을 부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전부 드리는 것이다.
"세상을 피하려 하지 말고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라. 세상을 지금까지 보던 것과 다르게 보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라. 하나님의 귀로 들으라. 하나님의 심장으로 느끼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생각하라"
2부. 새로운 영, 새로운 몸
05. 눈 ㅣ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기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지옥에 가 마땅한 내가 이런 날을 누리고 있다니?
죄는 삶을 '당연한 권리'라는 렌즈로 보게 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
"주님, 이 세상을 주님의 눈으로 보도록 도와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저는 주님이 멸시하는 것들을 중시하고 주님이 중시하는 것들을 멸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을 되찾는 일(영적 시력의 초점 조정)이야말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복 중의 하나다.
하나님의 눈은 긍정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할 때조차도 그분은 각자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계심을 나는 조금이나마 '보았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에게 관심이 있으시다. 우리가 그분을 인정하지 않을 때조차도 하나님은 정말 개입하신다.
변화의 복음은 정욕을 품지 않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긍휼을 중시하고 존중하고 자아내는 눈을 기르게 한다.
하나님의 눈은 사랑이다
하나님의 시각은 겸손(지옥에 가 마땅한 나를 하나님이 굳이 살려 주셨다)으로 시작해, 감사로 무르익고, 황송함으로 빚어지고, 경외심으로 유지된다.
하나님의 눈은 희망을 보게 한다
하나님의 시각 덕분에 우리는 스스로 희망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대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라
1. 하나님께 눈을 밝혀 달라고 기도하라.
하나님의 시각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리에게 없는 그것을 자비로 주신다.
"하나님, 보게 하여 주소서. 제 눈을 밝혀 주소서. 주님의 길에 대해 잠들지 않도록 눈먼 저를 깨워 주소서"
2. 당신의 눈과 약속하라.
3. 당신의 눈을 훈련하라.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 19:8)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영적으로 눈먼 상태는 불순종에도 일부 원인이 있지만 훈련되지 않은 게으름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수동적인 자세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
4. 당신의 눈으로 예배하라.
의식적으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에 두어야 한다.
06. 입 ㅣ 변화된 언어로 말하기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 끼어 드실 수 있게 해 드리라.
우리가 바라는 것은 변화된 혀다
어디서고 우리를 일꾼으로 쓰실 때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능력을 주시고 그분의 생명을 부르시고 그분의 빛을 비추신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그분의 손길에 조금이라도 닿을 때 오는 기쁨이 얼마나 충만한지를 우리가 알기만 한다면 그분을 섬기겠다고 나설 사람들이 절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말솜씨가 최고이신 우리 구주의 손안에 도구가 되는 것은 기운이 솟고 활력이 넘치는 일이다.
커뮤니케이션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변화된 언어생활은 하나님이 능력 주시는 삶의 외적 증거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약 3:8)_
우리가 바라는 것은 변화된 혀다.
말에는 힘이 있다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즉 말이 하는 일은 기술 이상이라는 것이다. 말은 행동한다. 사태를 변화시킨다. 말에는 힘이 있다. 예수님도 친히 그리 말씀하셨다.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7)
성경의 세계관은 말을 아주 심각하게 취급한다.
마음에 숨은 것이 입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하는 말의 위력과 힘 뒤에는 거룩한 위임이 있다. 말은 나라를 세우기도 하고 망하게도 한다.
혀를 하나님의 종으로 드리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행하실 수 있는 선은 끝이 없다. 그분이 베푸실 수 있는 격려, 죄에서 돌이키게 하실 사람의 수, 세우실 수 있는 공동체는 그야말로 무제한이다.
말의 놀라운 위력
예수님 자신이 '말씀'이라 지칭된다.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잠 12:6)
적시에 적절한 말을 하면 그 순간이 참으로 거룩한 순간이 되어 경이와 탄복이 절로 나온다.
하나님은 평범한 입을 변화시키신다
같은 말을 세 번 하면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분명히 모세는 자기가 지독히도 말주변이 없다고 보았다.
평번한 인간이 비범하신 하나님의 능동적인 도구가 되면 그렇게 된다.
기독교 영성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평범한 사람들을 취하여 하나님의 유능한 도구로 만드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정말 진지하게 여긴다면 우리도 변화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통 사람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혀를 훈련하라
혀를 길들일 수는 없지만 훈련할 수는 있다.
상처 주는 말을 삼가라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세우기 위한 진실하고 구속적인 말을 하라고 강권한다.
-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라.
-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라.
-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
-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하나님이 할 말을 주신다
하나님을 위해서만 일하지 말고 하나님과 협력하여 살면 삶이 변화된다.
협력의 이치란 내가 나 자신의 재능에 국한되어 있지 않기에 내줄 것이 아주 많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능력 주시는 삶의 기쁨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뭔가 보여 주려고 용쓰던 것을 그만두고 대신 하나님께 쓰임받는 상태로 안식할 수 있다.
07. 귀 ㅣ 하나님의 음성 경청하기
사람이 들으면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게 해 드려야 한다... 세상에 가장 필요한 교휸은 하나님을 듣는 기술이다 - 프랭크 부크먼
들고 읽으라
주를 가장 잘 섬기는 사람은 주에게서 자기 뜻대로 들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주께 듣는 말씀에 자기 뜻을 맞추어 고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시는가?
말씀이 객관적인 보호장치라면 성령의 기름부음은 주관적인 체험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먹은 상태
듣는 방식을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영적 진리에 주파수를 맞추려고 세심히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아니냐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떤 상태에서, 어떤 마음 가짐으로, 어떤 식으로, 어떻게 듣느냐의 문제까지 생각해야 한다.
경청은 지속적인 과정이다.
영적인 귀를 열라
신경과민 때문에 비틀거릴 때마다 이제 나는 그 이유가 교만임을 안다. 나는 종의 역할에 주력하기보다 좋은 인상을 풍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경청 훈련의 즐거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에 정렬시킨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은 마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완전히 매료되어야 한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9)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다.
듣기를 검증하라
성령의 감동은 반드시 검증하는 것이 지혜롭다.
검증1_성경
하나님의 음성인 것 같은데 성경의 계시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자동으로 버려야 한다. 유일하게 참되고 확실한 계시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의 첫 단계는 성경을 잘 아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며,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뼈대가 된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 게으르면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을 참으로 알고 싶다면 성경 지식에 기초한 사고력부터 길러야 한다.
검증2_ 교회의 증언
두 번째 검증은 하나님의 교회다.
검증3_ 거룩한 삶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또 하나의 조건은 거룩한 삶이다. 죄는 우리의 구원을 막을 수 없어도 우리의 귀를 막는 경향이 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경청하는 삶은 경건한 삶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레 5:32) 성령을 주신다.
순종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위한 필수 요소다.
검증4_ 하나님의 음성에 익숙해짐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음성을 듣는 자 되게 하셔서 우리가 게으르거나 자만하지 않도록, 행동에 성급하지 않고 늘 멈추어 듣도록, 그래서 그분을 따르며 그분의 뜻에 맞게 살아가도록 기도합시다.
08. 머리 ㅣ 하나님께 합당한 사고력키우기
하나님을 자주 생각하는 사람은 이 좁은 지구를 그냥 나다니는 사람보다 사고가 넓어진다 - J.I 패커
누구나 자기 중심적이 되기 쉽다
참된 변화는 도덕성에 기인한 행동을 넘어, 마음의 깊은 문제들까지 아우르도록 그 범위를 넓힌다. 나는 겉으로 '처신'을 잘할 뿐만 아니라 속으로도 그리스도처럼 생각해야 한다.
사고의 훈련이 필요하다
지혜롭지 못한 선택들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점점 더 미련해질' 수 있다.
기분과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며 타락시킬 수 있다.
그동안 아무리 많은 진보를 했더라도, 한 번 밑으러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다 잃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혼란(지각의 결핍)은 더 많은 혼미함을 낳는다.
기독교는 바른 삶이 필수다. 그 요소로 사고의 역할을 중시한다.
사고와 행동은 떨어질 수 없다. 행동이 미끄러지면 생각도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거룩함과 바른 사고의 연관성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명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롬 8:5-7)
하나님을 생각하려면 내 삶 전체가 하나님께 초점을 두고 하나님을 지향해야 한다.
영적 세계를 바로 알고 오류에서 벗어나려면 거룩함이 필수다.
행동은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피할 수 없는 진리다.
새로운 사고가 요구된다.
우리의 설교나 교육을 떠받치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 설득력 있는 진리와 심령을 꿰뚫는 통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의 변화, 우리에게 달렸다
나는 무서움은 금물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두려움은 중요하고도 건강에 좋은 것이다. 나는 하도 두려웠던 적이 많아 이제 두려움이 편해졌다. 두려움이 느껴지면 사람들은 다짜고짜 '못하겠다'는 생각부터 한다. 그러나 생각은 우리가 통제하기 나름이다. 거꾸로 생각이 우리를 통제하려 들겠지만, 생각이 너무 앞서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이 우리를 다스리지 않도록 우리가 생각을 다스려야 한다.
변화의 주체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도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길 책임이 있다. 이것이 아름다운 싸움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하나님이 당신을 그분 마음대로 하시게 해 드리라. 그분께 저항하지 말라. 세상의 본을 따르지 말라. 하나님이 당신을 변화시키시게 해 드리라.
거룩한 사고는 하나님께 사로잡힌 사고다.
성화된 사고는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하시는 것에 순응하는 사고다.
1. 부지런한 학생이 되라.
무지는 그냥 죄가 아니라 갈수록 더 많은 죄를 낳는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무지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2. 검증된 교사들에게 배우라.
3. 시간을 구속하라.
4. 방향을 바꾸라.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우리는 생각을 다스려야 한다. 생각을 그냥 두면 불안, 의심, 염려, 두려움, 헛된 공상의 온상이 될 수 있다.
인간 존재의 각 요소를 우리가 지배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께 변화를 받아야 한다.
09. 손과 발 ㅣ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우리가 세상을 빚어낸다
내가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우리는 힘센 존재다.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세상을 만들어간다. 사실 이 땅을 걸으며 어느 쪽으로든 영향을 주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여러 모양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
처음부터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다. 그분은 계획이 있었고 그 계획을 이루셨다. 내가 미래에 대해서 의심할 때도 하나님은 앞일을 아셔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요 9:3-4)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목적이 있다. 하나님은 그 목적을 이루시려고 지금 일하시는 중이다. 그분의 목적이요 그분이 하시는 일이기에 절대로 확실하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 그렇게 될 것을 하나님은 아신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는 사람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일이든 기다림이든, 승리든 패배든, 고난이든 회복이든, 삶이든 죽음이든 그냥 하나님이 뜻하신 일이 인생의 목적이다.
그리스도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목적에 맞추고 자신을 내드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하여 사신다.
우리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하시게 해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 자신을 열어 드리려면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믿어야 한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이루어 달라고 겸손히 기도해야 한다.
3. 그런 사역에 준비 되려면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가꾸고 날마다 그분의 내주하시는 능력 안에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한다
섬김은 영혼의 살사소스다.
섬김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귀한 복에 해당됨을 기억하면 좋겠다.
기독교에는 일의 소명이 포함되어 있음을 기억하라. 그리스도인 됨은 영광이요 기쁨이며 자격없이 받는 은혜지만 또한 책임과 이루어야 할 과제도 뒤따른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이다.
"정말 만족스러운 삶을 원하는가?" 만족이란 내 계획대로 하나님을 조르는 것이 아니다. 만족은 내가 하나님의 계획에 순복하는 데 있음을 잊지 말라.
하나님이 필요를 보여 주시면 추수해야 할 부분은 우리의 책임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의 손발이 되어야 한다.
땀 흘리며 친해진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일하면 우리의 땀이 친밀함을 낳는다.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가 무엇이든 대개는 예수님과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당신의 심령을 위해서 이것은 아주 유익한 영적 연습이다.
우리의 섬김은 사명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성경의 세계관으로 볼 때 우리는 누구도 자영업자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값으로 사신 존재다.
기독교의 핵심은 신앙을 지키는 것보다 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섬김은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아버지, 더 이상 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와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10. 마음 ㅣ 예수님처럼 생각하기
사람이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사랑과 따뜻한 긍휼을 느낄 때 그것은 그 사람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다 - 노르위치의 줄리안
하나님은 열정을 주신다
하나님이 어련히 다 알아서 하신다!
하나님은 느낌이 멎어 버린 마음에 그분의 열정과 목적과 관심을 불어 넣어 주실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신다.
마음이 아주 중요하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본래 우리는 자신의 열정이 삶의 노선을 결정하도록 지음 받았다.
영적 술 취함
죄는 우리를 취하게 하여 현실을 보는 눈을 왜곡시킨다.
'기분상 옳다'는 이유로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이 승인하신다는 확신마저 가지기도 한다.
성적인 죄와 물질적인 죄는 우리를 영적으로 술취하게 할 수 있다.
진짜 위험은 죄 그 자체만이 아니라 우리가 죄에 잔뜩 취해 자신이 취한지조차 모든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정돈된 마음
1. 제대로 정돈된 마음은 사랑과 기쁨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
존중심 없는 사랑(훈련 없는 감정)은 비참할 정도로 약하다. 감정은 튼튼한 닻이 아니라 변덕스런 손님이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존중심에 기초한 긴박감을 주신다. 새 마음을 받으면 우리는 마음이 동하여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 행"하게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실체 속에 살지 못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안전한 틈새 속에서 지켜보는 폭풍과도 같다.
2. 제대로 정돈된 마음은 죄를 죄로 본다.
바울은 죄에 반감을 느꼈고, 예리한 분별력으로 죄의 파괴성을 즉각 감지했다.
바울은 죄를 혐오했다. 이런 반응에서 진정한 삶이 나온다. 죄를 털끝만큼도 용납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마음으로부터 죄를 혐오하는 것이다.
3. 제대로 정돈된 마음은 하나님의 '영원한 즐거움'을 사랑한다.
생명의 길은 영원한 즐거움으로 충만하며 꾸준한 만족이 나온다.
일시적인 즐거움은 영원한 즐거움을 쉽게 몰아낼 수 있다.
하나님께 벌을 받고 싶지 않아서 삼가는 것이다.
의지적인 순종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아주 큰 빚을 진 하나님을 속상하게 해 드리고 싶지 않다. 이것은 관계적인 순종이다. 그 다음은 선에 참으로 만족하게 되고 내 마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만 원하기 때문에 순종하게 되어 최고 단계에 이른다. 이것은 변화된 순종이다.
지름길은 없다.
아버지의 얼굴
사소해 보이는 섬김의 행위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자기 사람들에게 열정적이신 분임을 깨닫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길은 먼저 하나님의 생각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은 하나님의 생각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각은 하나님의 열정을 낳는다. 그래서 나는 성경공부와 경청 기도에 시간을 들여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켜 내 마음을 그분의 마음에 맞추어 주실 수 있도록 말이다.
자아집착에서 해방된다
원망 속에 뒹굴기보다 그렇게 기도하고 나니 선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이 넘쳤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느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는 없다.
사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망므을 미움에 내어주는 순간 더 이상 사물이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랑을 멈추고 미워하기 시작하며 서로의 단점을 극대화 한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시지만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관심도 부족하지 않으시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의 균형을 유지해 준다.
3부. 변화의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소명
11. 거룩함1 ㅣ 하나님께 쓰임받는 도구가 된다
그분은 한번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신다 - 데이비드 폴리슨
거룩함이란 '회복의 승리'이다
오늘날 우리는 거룩함을 '회복의 승리'로 정의한다.
거룩함은 하나님께 유용하게 되는 것이다
거룩함이란 다분히 우리 몸의 지체들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것이고, 성령으로 하여금 우리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게 해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거룩해진다. 변화받기 위해 일단 몸을 내어 드리면 나는 살아 호흡하는 가능성의 장이 된다. 하나님이 사용하여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동력이 되고, 이 진리의 가르침 덕분에 내 인생의 사명은 어디를 가나 그리스도를 대변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한낱 순종 자체가 아니라 뜨거운 관계로 부름 받았다.
"모든 영적 승리의 비밀은 유혹과 장애물을 바라보지 않고 주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께 유용한 상태'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고, 하나님께 쓰임 받을 준비가 되어, 순간순간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변화의 복음은 금지의 종교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매혹적인 여정이다.
한낱 금지의 신앙은 좌절감을 줄 뿐더러 결국은 불가능함에 이른다.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면...
예기치 못한 순간에도 나는 하나님께 유용한 상태로 있었는가?
우리는 영적으로 훈련해야 하며, 그 훈련의 한 부분으로 죄를 회개하고 덕을 길러야 한다.
다가가라고 우리를 사용하신다.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면' 그분이 남들을 내 앞으로 데려와 그들에게 내 주파수를 맞추어 주신다.
거룩함이란 하나님을 더 의식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께 쓰임받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
항상 대기 상태
하나님은 그분이 뜻하시는 때에 뜻하시는 곳에서 뜻하시는 방식대로 역사하신다.
매 순간이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충만해지고 매 상황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분을 드러내실 기회가 된다면, 그것보다 경이로운 것은 없다.
12. 거룩함2 ㅣ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최대의 윤리적 도전은 사람들이 당신의 삶을 보고 당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사는 것이다 - 존파이퍼
가장 높은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걸어 다니는 광고판
그러나 이름은 '그리스도인'인데 그 진리를 부정하는 식으로 산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디딤돌이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을 높이거나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
실제로 그렇게 살라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한 삶, 변화된 삶을 살려는 의욕과 능력을 준다.
죄짓는 생활은 강퍅하고 배은망덕한 마음의 표출이기도 하다.
우리는 천국 생활의 혜택은 선뜻 받아들이지만 책임은 회피한다.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가졌다면 그분의 얼굴도 보여야 한다.
핵심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해 주셨는지 생각해 보라. 당신의 구원을 얻어내시려고 그분이 치르신 무시무시한 대가를 생각해 보라.
우리의 이름은 그리스도인, 즉 '작은 그리스도'다.
우리는 피곤해질지 모르지만 은혜는 그렇지 않다.
당신을 구원한 은혜는 곧 당신을 계속 변화시키는 은혜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말이다.
13. 평생의 비전, 예수님 닮기
나의 비전은 늙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온전함이란
1. 우리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2. 마음과 삶을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뜻입니다.
3.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되찾는다는 뜻입니다.
4. 그리스도의 모든 생각을 품는다는 뜻입니다.
5.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대로 똑같이 행한다는 뜻입니다.
변화를 주는 새 언약의 능력이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신앙고백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 삶에 그리스도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고백이 의문스럽다고 보았다.
당신의 은혜는 삶을 변화시키는가?
기도와 성경공부는 하는데 행동은 여느 누구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내 신앙생활은 자녀들에게 득보다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내 신앙이 반드시 행동에 뿌리박아야 하는 한 가지 이유는 내 신앙에 대해 듣는 사람들이 내 부실한 모범 때문에 돌아서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은혜가 하는 일은 우리에게 용서를 얻어 주는 것 이상이다. 은혜는 우리를 움직여 거룩함을 실천하게 한다.
사명을 수행 중이신 하나님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내 시선을 끌고자 이따금씩 사건들을 배열하셔서 나를 압도하실 수 있음도 믿어야 한다.
예, 제가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게 무엇입니까? 제 안에 빚으시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게 없는 강점들이 무엇입니까? 주께서 지적하시는 약점들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답게' 운전해야 한다.
계속하여 자라기를 힘쓰라
영적인 사춘기
내가 열 번을 실패하면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내게 한 번의 승리를 주신다.
정말 나는 바로 알아들을 때보다 잘못 알아들을 때가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나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속속들이 빛을 비추시며 정말 놀랍게 일하실 때면 그 영광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온전함은 이 세상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이지만, 그곳을 향한 여정은 경이로울 만큼 가치가 있다.
14. 쉬운 일이 아니라면?
대가가 따른다
비범한 친밀함과 겸손
성품의 변화는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일이지만 또한 많은 노력, 빈틈없는 성찰, 치열한 사고, 자기훈련, 회개하는 삶을 요한다.
고통은 어디에나 있다
하나님은 '최선'만 택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 스트레스가 넘치게 하는 최고의 길은 하나님의 계획에 반항하는 것이다. 불안에 빠지는 가장 확실한 길은 불경한 삶이다. 내가 선택한 죄들의 무게보다 내가 져야 할 더 무거운 짐은 없다.
하나님을 모르면 내 욕망의 처분에 맡겨지는데 하나님 없는 욕망은 무자비하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물론 어려운 길이다
참된 변화는 끊임없는 선택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작은 일들이 결국 큰 성품을 낳는다.
삶의 작은 일들 속에서 자아를 부인할 때(이해받기보다 이해하려 하고, 무조건 대놓고 비난하기 전에 말을 아끼고, 용서와 섬김과 경청으로 내 의지를 깨뜨릴 때)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 태어난다. 대개는 이것이 영적 훈련의 가장 확실한 시험이다.
때로 아주 힘든 일도 해야 한다
인내가 없이는 성숙도 없다.
삶을 되돌아 보라. 제대로 살 기회가 얼마나 많았으며 우리가 인내하지 않아 그 기회를 놓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연약한 내 모습으로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보다 더 귀하고 풍요롭고 극히 만족스러운 일은 다시 없다.
하나님이 쓰시는 모든 도구에는 그분의 생명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닮고 싶다면 값을 지불해야한다
결과에 매료되기 전에 우리는 과정을 정직하게 직시해야 한다.
당신이 지불할 대가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시려면 우리를 훈련하셔야 한다.
변화의 과정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에 변화는 겸손의 덕을 통해 뿌리내린다.
다음으로 변화는 순복을 통해 강화된다.
끝으로 감사를 품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미 해 주신 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지금 하고 계시고 앞으로 하실 일에 대해서까지 감사해야 한다.
15. 공동체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개개인의 지독하게 한심한 모습
"제게 필요한 것도 그겁니다. 주님의 능력과 주님의 권위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권위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심각한 결함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각 사람을 여전히 사랑하셨고 부르셨고 쓰셨다.
영성계발의 관점에서 보면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들을 무엇이나 유익하다.
활활 타오르는 불
당신의 삶은 하나님의 전체 융단의 한 부분이다.
16. 거룩이 능력이다
죄에 승산이 있는 것은 하나뿐이니 곧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 헨리 드러몬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의지다. 의지(지성이나 감정이 아니라)는 인간이 하나님과 연합하는 주된 도구다.
수석 코치이신 하나님과 함께하라
-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산다.
- 그분의 말씀을 존중한다.
- 그분과 교제하며 동행한다.
- 사람들과 화평하게 함께 산다.
- 사람들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한.
나는 잃어버린 모든 기회들이 후회되었지만 하나님은 살려낸 기회들을 상기시켜 주셨다. 나는 아직 다하지 못한 일들이 죄다 생각났지만 하나님은 그분이 여전히 모든 일을 하고 계심을 보이시며 나를 격려해 주셨다.
자녀양육은 결코 우리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신기한 느낌이 내게 있었다.
하나님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함꼐 사는 삶이 추상적인 교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인생에 이보다 더 실제적인 도움은 만날 수 ㅇ벗다.
순종은 케이크 만들기와 같다
거룩함에서 자라감을 말할 때 성경은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공급이 서로 적대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임을 명백히 밝힌다.
은혜는 인간의 노력을 없내는 것이 아니라 그 노력에 능력을 입혀 주고 초점을 잡아 준다.
영혼과 마음도 돌보지 않고 관리하지 않으면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없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명심하라. 세상은 우발적인 곳이 아니라 질서정연한 곳이다.
안식으로 가는 여정
하나님은 영적 안식이 그분 안에만 있도록 세상을 정하셨다. 안식은 그분이 주신다. 하나님은 그분께 오라고, 그분의 멍에를 메고 그분께 배우라고 우리를 청하시고 권하시고 부르신다.
"내게로 오라"(인간의 책임), 그러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나님의 공급) "내게 배우라"(인간의 책임), 단 겸손히 배우라"(하나님의 공급을 받는 자세로). 그러고 나서 맨 뒤에 확실한 약속이 온다.
영적 안식은 인간의 일회적인 결단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결과다.
먼저 안식이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리스도 때문에만 가능함을 인정해야 한다.
안식을 알려면 내가 변화되어야 한다. 변화는 예수께 가서 그분께 배우고 그분의 성품을 본받고 그분의 뜻에 순복하는 과정이다.
멍에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가혹한 장치가 아니라 힘든 노동을 가볍게 만드는 온유한 장치다. 멍에란 본래 고통을 가하는 게 아니라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멘 존재다.
하나님이 능력 주시는 삶으로
하나님이 눙력 주시는 삶은 엄청난 희망과 자비의 삶이다.
하나님이 능력 주시는 삶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 둘 다'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변화가 우리 일상생활의 통상적인 일부가 되려면 조건을 바로 알아야 한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께로 와서 그분께 배우고 그분의 멍에를 메야 한다.
더 위대한 삶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변화란 그분의 은총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임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HappyFactory_ > Book_'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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