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의 글은 언제나 명확하고 힘이 있다. 그래서 참 좋다.
인생을 통찰하는 다섯 가지 지혜
1. 작은 자아에서 더 넓은 은혜로 From our little selves to a larger world
어떻게하면 내 고통을 성장과 배움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을 보며 고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한복판에서 생에 몰입하는 것이 고통을 통과하는 길임을 배웠다.
어떻게 하면 인간의 아픔을 하나님과 연결지을 수 있는가?
자신의 이야기 일부를 하나님의 눈과 자신의 양심을 피해 숨기려는 것은 내가 내 과거의 심판자가 되겠다는 뜻이다.
상실과 상처를 벗어나는 길은 그 속에 들어가 그것을 통과하는 것이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상처 입은 자신의 상태에 직면할 수 있는 자들만 치유를 받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바쁜 삶은 언젠가 부딪쳐야 할 문제를 당장은 회피하는 구실이 된다.
악한 마귀는 우리를 정신없게 만들어, 자투리 시간이 조금만 보여도 온갖 할 일과 만날 사람과 처리할 업무와 만들어야 할 제품으로 쉴 틈을 주지 않으려 한다. 마귀는 진정한 슬픔과 애통할 여지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상실에 직면한다는 것은 인생을 단순한 생계 유지 작업으로 보려는 유혹을 물리친다는 뜻도 된다.
우리의 필요는 절대 만족을 모르는 것만 같다.
가치있는 것 대부분은 부딪쳐야 얻을 수 있다.
인내를 배운다는 것은 어떤 고생에도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쉬운길은 얄팍하다. 그 얄팍함이 다 닳아 버리면 우리는 원한과 냉소를 품거나 폭행과 공격을 하기 쉽다.
하나님이 고난을 사용하여 나를 빚으시고 당신과 더 가까워지게 하신다는 것을 깨달을수록 우리는 그만큼 고난을 부정하지 않게 된다.
쉬운 승리는 우리의 어줍잖은 꿈과 환상에 근거한 것이요, 어려운 승리는 인내와 애정 어린 손으로 우리를 깨끗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것이다.
작은 고통이든 견딜 수 없이 큰 고통이든 우리 삶의 모든 고통은 더 큰 그리스도의 고통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나는 그 속에서, 그것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시편 30:11)
슬픔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삶의 중심을 자기에게 두지 않는 것이다.
슬픔과 복을 한데 엮어 기쁨의 스텝을 내딛는 것이 곧 찬미의 춤임을 깨닫는다.
가장 깊은 의미에서 감사란 삶을 고맙게 받아야 할 선물로 산다는 뜻이다. 진정한 감사는 좋은 것과 나쁜 것, 기쁜 일과 아픈 일, 거룩한 부분과 거룩하지 않은 부분을 가리지 않고 삶 전체를 끌어안는다.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인 십자가는 우리를 불러 고통이 있는 곳에서 은혜를, 죽음이 있는 곳에서 부활을 보게 한다.
2. 움켜쥠에서 내려놓음으로 From holding tight to letting go
기꺼이 내려놓으려는 자세로 사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최대 도전 중 하나다.
우리는 내려놓을 때 받는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약해진다는 것이다.
천국을 제외하고 사람의 위험에서 완전히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지옥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반응할 자유를 준다는 뜻이다.
우리의 아픔과 주님의 고난은 밀접하게 열결돼 있다.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분이 하늘 아버지임을 거듭 확인하신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할 때 우리의 정체감은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말이나 생각에 좌우되지 않는다. 우리는 대인 관계를 포로 노릇을 그치게 된다.
기도는 우리에게 대인 관계가 우상이 되지 않게 하는 길을 보여 준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9)
먼저 주신 그 사랑을 입었기에 우리는 자유롭다.
기도는 세상을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선물로 여기는 태도다.
여러 면에서 기도는 삶에 대한 하나의 태도다. 언제나 주시는 선물에 마음을 여는 태도다.
"다른 사람이 너를 좋아하든 말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네 안에 사는 것처럼 너도 내 안에 살아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다.
기도란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용납하고 사랑해야 할 인격으로 보게 하는 것임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다.
기다리며 살피며 섬기려면 우선 보는 사람이 돼야 한다.
조용한 공간을 하나님께 떼어드려 거기서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에게 빈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빈 곳만 보면 채우고 싶어한다.
귀 기울인다는 것은 내 생각을 접어 두고 초연하게 마음을 비워 상대가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소중한 선물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 선물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찾아 나서기때문이다.
3. 운명론에서 희망으로 From fatalism to hope
믿음의 사람은 기꺼이 새로운 일을 허용하며, 아직 들은 적 없는 가능성에서 파생하는 일을 책임진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가 냉소가 아니라 능동적 기대로 살아갈 수 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예수님은 우리에게 물으신다. "너는 믿느냐? 너에게 유일한 생명을 주실 정도로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느냐?"
우리 희망의 근거는 삶과 고난보다 강하신 그분이다.
믿음이란 희망에 여지를 두는 것이다.
우리의 하루하루 속에서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과거를 잊는 것은 자신과 가장 친밀한 교사를 적으로 삼는 것과 같다.
기억을 더듬는다는 것은 아픈 추억을 특정한 방식으로 붙든다는 뜻이다.
기억은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 과거를 치유 가망성이 있는 현재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기억이란 미래와 깊은 관련이 있다. 기억 없이는 기대도 없다. 기억이 적은 사람은 기대할 것도 적다. 기억은 우리를 과거에 닻을 내리게 하고, 지금 여기에 현존하게 하며, 나아가 새로운 미래에 마음을 열게 한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는 말이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희망이 있는 한 삶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 하나만 붙들고 있다. 아직 온전히 믿는다고는 고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진리는 빛나리라고 여전히 믿는다. 내가 못하는 일을 하나님이 그 은혜와 측량 못할 권능으로 이루실 것을 끝까지 믿는다.
내일을 믿는 사람들이 오늘을 더 잘 살 수 있다.
4. 감정의 조종에서 순전한 사랑으로 From manipulation to love
긍휼 compassion
'함께 아파한다'
긍휼을 베푼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에 동참한다는 뜻이다.
문자적 의미에서 진정한 사람( person)
per는 '통과한다'는 뜻이고 sonore는 소리이므로(어근상으로 말하면) 사람이란 곧 '소리를 통과시킨다'는 뜻이다.
그 사랑의 '소리를 통과시키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존재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사랑받았기 때문이다.
고독은 우리가 혼자여서 때로 치유가 필요하다는 서글픈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독은 단순히 숲이나 사막이나 산꼭대기에 숨어들어 은밀히 칩거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감시 선다는 뜻이다. 단순히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단둘이 있기 위해서다.
고독이란 곧 나를 '사랑하는 자'라 부르는 음성, 나를 다음 장의 모험으로 이끄시는 음성, 하나님이 예수님께 하신 것처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자라"(마3:17)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리다.
나를 '사랑하는 자'라 부르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우리 정체의 기초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랑받고 싶다는 가장 깊은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우리는 고독 속에서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고독은 어느 정도의 집중이 필요하다.
고독과 단짝인 침묵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막 1:35)
침묵과 언어가 둘 다 제자리에 있었고, 그분은 침묵 속에서 적절한 말을 찾으셨다.
우리가 폭력적이 되는 주된 이유는 상대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내 모든 해답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지 않을 때, 비로소 상대가 내게 주는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부분적으로 반영할 뿐이다.
기도를 통해 모든 삶을 선물로 보게 되면 인간이야말로 그 중 최고의 선물이 된다.
사랑스럽지 않고 사랑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의 테스트는 원수를 용서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용서하신 것처럼(눅23:34) 우리도 용서해야 한다.
5. 두려운 죽음에서 환희의 삶으로 From a fearful death to a joyus life
30년이든, 90년이든 우리 수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숨은 선물을 받아들이는 기회다.
우리는 이렇게 죽음과 가까이 살면서도 왜 죽을 준비를 하지 않을 것일까?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에서 아득히 멀리 계시는 듯이 보여도 우리는 여전히 그분께 나아간다.
죽음을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말라. 우리의 슬픔에 하나님을 모셔들이면 결코 홀로 걷지 않을 것이다.
죽음에 직면할 떄 결국 우리는 삶을 더 잘 살 수 있다. 그리고 슬픔의 밤을 지나 희망의 아침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의 기쁨으로 더 잘 춤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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