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과의 인연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정이 참으로 오묘하고 독특하며,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귀한 만남의 축복을 통해 비전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보게 되었고 많은 것들을 내려놓게 되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언제든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삶.
비로서 내 인생에 비전이 보인다.
[밑줄 그리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통찰력'
'지성의 눈으로 미래를 보는 것(상상력)'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식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판이하게 다름을 발견할 수 있다.
지시할 땅(the land that I will show you)
하나님이 이미 보여주고 지시하신 땅이 아니다. 하나님이 앞으로 보여 주실 땅이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는 것'
분명한 점은 지금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가운데 행하시는 신비롭고도 역설적인 방식이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비전이 하나님을 가릴 수도 있다.
그림이 분명하지 않고 오히려 그림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분의 음성이 분명할 때, 우리는 비전보다 비전을 주시는 분에게 더욱 집중하게 된다. 여기서 비전의 문제는 신뢰와 믿음의 문제로 바뀐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신 8:2-3)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하나님 말씀에 앞서지 않음을 예수님은 아셨다.
예측 가능성이 지배하는 생활
눈에 보이는 것 없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 아브라함의 삶(창 12:1)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독특한 개성이 무엇이고, 내면의 음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귀 기울일 여유를 갖기도 전에 눈에 당장 보이는 '비전'에 마음이 쏠리는 것이다.
더구나 이 비전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어떻게든 이루어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또 우리는 비전을 이루면 모든 것이 잘 되는 행복한 상태에 이를 것으로 기대한다.
자신의 노력과 열심을 과신하고, 자신의 성실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으로 확신한다. 종종 아메리칸 드림은 신앙의 가면을 쓰고 비전이란 이름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비전(vision) '볼수 있 능력(The faculty of sight)'
우리 인생을 바라보고 인도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전체에 그림을 갖고 계시다. 그 그림은 너무나 정교하고 웅장해 인간의 시각으로는 한 번에 바라볼 수도 없고, 그 의미를 능히 헤아리기도 어렵다. 사람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다 측량할 수 없다.(전 3:11)
분명한 그림은 실천 가능성을 포함한다.
다른 한편으로 사막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만들어 가실 매우 독특하고 창의적인 인생 여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다른 모든 사람이 추구하려는 정상을 향해서만 우리를 인도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의 계획과 준비가 별 소용이 없는 사막과 같은 곳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기꺼이 내려놓을 때 우리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고 독특하게 인도해 가신다.
비전을 고려할 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이다. 하나님의 시선은 주변 호나경에 좌우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의 인생을 향해 갖고 계신 그림은 저마다 다르고 독특하고 특별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멋진 비전이 있으면 이를 부끄러워하고 따라가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독특한 그림이 있기에 다른 이와 비교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독특하고(special) 유일하게(unique) 바라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시선은 비록 좁더라도 그분의 길을 따라가는 것을 기뻐하신다.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눅 12:7). 이는 하나님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한 사람에게 커다란 관심을 갖고 계심을 의미한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I have a plan for you)이 있다."
'환상'이 단수히 보는 것을 넘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때때로 자신의 종을 훈련시키고 비전의 사람으로 만들 때, 불확실성 속으로 내던지셨다.
비전은 그리스도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훌륭한 비전은 종종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선에 대한 강렬한 내적충동에서 출발한다. 즉, 비전의 출처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서 시작될 수도 있다.
'소원'에는 그리스도인이 갖는 비전에 대한 혼동을 푸는 실마리가 들어 있다.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시 20:4)
이 말씀은 소원의 출처가 우리 자신임을 알려준다. 우리는 마음껏 소원을 품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송원을 막지 않으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시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원하는 소원을 주신다. 그리고 이 소원을 이루도록 노력하며 행동하게 도우신다. 이것은 그분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함이다.
우리 자신이 소원을 품을 때, 그것이 크게 악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그 소원을 허락하신다.
소원에 지식을 더하면 실현 가능하다.
지식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하느니라(잠 19:2)
여기서 지식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정보아 지혜(과거적 요소), 현실 직시와 숙고(현재적 요소), 계획(미래적 요소)을 포함한다.
우리의 소원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실현 가능한 통찰력 있는 '소원'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자녀의 소원을 만족시켜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자녀가 품은 것이라면 그 소원을 이루어 주고 싶어하신다.
우리가 마은속에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가운데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도와주시는 분이다.
(여호와께서)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5)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시 145:19)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시 10:17)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겸손한 자녀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시는 분이다. 그리고 이왕 만족시켜 주실 것이면 대충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온갖 '좋은 것'으로 만족시켜 주기를 원하신다.
저희가 평온함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도다(시 107:30)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 소원을 아뢸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춰지지 아니하나이다(시 38:9).
'모든 소원(all my longings)'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 16:23)
예수님은 우리의 소원을 믿음으로 하나님에게 아뢰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소원의 동기가 악하지 않은 이상(약 4:3),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자녀의 소원을 들어주길 기뻐하신다.
소원은 인간이 주도적으로 시작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로 완성된다.
인간이 시작한 소원은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를 통해 완성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
소원은 인간의 자기 주도와 하나님의 손길이 협력하여 역사한다.
Do your best, God will do the rest!
그대는 자신의 소원을 향해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그대를 도우며 아름답게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는 믿음 가운데 하나님 앞에 품은 비전을 내려놓고 담대히 구해야 한다.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주실 것이다.
우리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배후에서 우리를 도우며 뜻대로 인도하신다.
성경은, 부르심이 확실하면 구체적 그림이 없어도 떠날 수 있다고 말씀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온전히 시뢰하면 하나님이 그 결과를 온전히 책임지고 주도하시기 때문이다.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 내가 네게 복을 주어
- 내가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 그 결과는 하나님이 아름다운 복으로 채워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소명 사건은 인간의 응답을 요청한다. 하나님 편에서 사람을 부르셨다면, 사람 편에서는 믿음으로 응답해야 한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모세 편에서는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호기심은 소명을 향해 나아가도록 한다.
중요한 점은, 모세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누가 모세와 함께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약속의 징표로 증거를 주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하나님과는 뜻이 다른 모세의 손에 맡김으로써 그가 원하는 방식에 맞추고자 하신다.
과연 하나님의 최선이었을까?
하나님이 모세를 사용할 때, 그의 현재 모습 그대로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이 드러날 것을 미리 아시고 이 연약함을 다루기 위해 준비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르심의 요청은 강력하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그분을 따르는 것이 우선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겸손하고 민감하게 분별해 순종할 필요가 있다.
소명 사건은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부르신다는 것이다.
부르심은 어느 날 불쑥 찬아온다.
부르심의 시기는 우리 편에서 준비하기보다 하나님의 준비되심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부르심은 하나님의 주도적 역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확실한 것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일꾼을 늘 불확실성 속으로 부르신다.
부르심은 삶의 구체적인 현장 가운데 일어난다.
부르심은, 우리가 처한 삶의 구체적 현장 가운데에서 일어난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루려고 다급하게 서두른다. 그리고 서두름은 떄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하게 한다.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르신 분을 끝까지 신뢰하는 믿음과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다.
오히려 그 통제는 하나님께 있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역사를 이루기 위해 그 꿈 고유의 길을 간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답답함 근저에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청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을 헤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가 비록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하는 한 조각이 될 수 있음을 뜻한다.
부르심은 다양한 통로를 통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지금여기(here and now)'에 있다. 현재는 과거를 토대로 세워졌고 미래를 위한 재료가 된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 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 34)
미래에만 온 마음이 가 있을때, 우리는 현재를 게을리하기 쉽다. 그리고 현재를 나태하게 보내다 자신이 기대한 미래를 맞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아름답고 달콤한 꿈을 꿀 떄, 우리의 시선은 현재에 집중해 있어야 한다.
지금 나를 부르시는 소명의 길이 어떻게 열리는지 주의 깊게 살펴라.
우리가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래로 달려가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현재를 충실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계속해서 흘러가는 시간 개념인 '크로노스',
하나님이 예정하신 때의 개념인 '카이로스'
카이로스를 지각하기 위해서는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크로노스의 매 순간을 의미와 믿음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크로노스를 성실히 채워 나갈 때, 우리는 카이로스를 맞이할 수 있다.
다변화되는 시대를 감지해 교차점을 준비하라.
다양한 관심사를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다양한 관심사를 키우고, 더 나아가 이 관심사들을 서로 연결해야 한다.
기회가 주어질 때 배우라.
기존의 발상을 뒤집는 역발상을 시도해 보아야 한다.
우리 내면에는 부정적 성향이 있어 종종 전진하는 것을 가로막곤 한다.
많은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창출해야 한다.
오히려 이미 표현한 아이디어를 토대로 더욱 멋진 창조적 아이디어가 생겨나기도 한다.
편한 곳에만 머물려 하지 말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기쁨으로 인내해야 한다.
'나'를 특별하게 보는 하나님이 '나'만을 향한 특별히 주시는 부르심이어야 한다.
이것만 생각하면 자신 안에 열정과 기쁨이 생긴다. 그렇다면 그것은 소명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일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억지로 부르심에 응하기보다 기쁨과 감격으로 응답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재능, 열정, 필요, 양심
우선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에 주신 음성이 성경적으로 일치하는지 알아야 한다.
평강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중요한 표지중 하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에 있을 때, 우리는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그분의 평강을 경험한다(빌 4:7)
소명의 길은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 기여한다.
성령님은 참된 기쁨과 영적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아무런 이유 없이 영혼에게 장차 소유할 평안을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까닭있는 위안은 성령도 사탄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서로 상반된다.
영혼이 고독해지는 이유는, 영적 생활의 게으름 때문이다. 하나님의 시험 떄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더 깊은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소명의 확인은 결코 즉흥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리더에게 소명을 줄 때, 한번만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 부르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공식으로 제한하지 말라.
분별과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와 더욱 친밀해지길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공식으로 만들려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알아라. 나와 시간을 보내고, 너의 삶 모든 분야에서 나를 최우선순위로 두어라. 그러면 내가 모든 세부 사항을 책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이다.
하나님의 본질적인 부르심은 '존재적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만 알기 원하지, '하나님을 알기'는 그다지 원치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음성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은 우리 삶의 근본적인 방향을 결정한다.
눈앞에 보이는 중.단기적인 목표들은 비전을 성취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목표와 전략이 없는 비전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소명은 점진적으로 드러난다 - 삶의 모자이크
인생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거대한 모자이크와 같다.
우리 인생은 작품이다. 지구상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있지만, 각자의 인생은 저마다 다르고 독특하다.
모자이크 조각은 하나하나가 성실하게 채워져야 한다는것이다. 바다에 사는 상어에게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계속해서 헤엄치지 않으면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성실하게 헤엄쳐야 한다.
현재의 성실함은 다음 단계의 모자이크를 채우는 발판이 된다.
하나님을 신뢰하라.
우리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더라도, 지금 이곳에서 자신을 부르시는 그분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만약 아버지의 인도를 거부하면 우리 인생의 모자이크는 커다란 구멍이 생길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전체를 보며 섬세하게 인도하고 계신다.
소명을 추구하는 데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실행력이다.
발을 떼면서 지경이 엄청나게 넓어졌습니다.
우리 삶의 에너지는 끊임없이 흩어지려 한다. 따라서 삶의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모으고 집중하기 위한 방향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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