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하라, 너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조지 버나드 쇼
이토록 절절한 표현도 부족하다고 생각될 만큼 젊음은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그토록 좋은 시기라는 것은, 가능성 떄문이다.
무언가 이뤄야 한다는 강박에 휩쓸린 탓에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춰서는 것조차 불안해하며, 저작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은 깨닫지 못한다.
모쪼록 나는 그대들이 더 어리석었으면 좋겠다. 너무 영리하게 코앞에 있는 단 1%의 이익을 좇는 트레이더가 아니라, 자신의 열정에 가능성을 묻어놓고 우직하게 기다릴 줄 아는 투자가였으면 좋겠다. 눈앞에 보이는 결승점을 향해 전력질주한 후 지쳐 헐떡이며 퍼져버리는 100m 달리기 선수가 아니라, 저 멀리 열망하는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우둔한 답사자였으면 좋겠다.
그대, 이름만으로도 가슴 뛰는 청춘이다. 어리석은 답사를 지금부터 시작하라.
[인생시계: 그대의 인생은 몇 시인가?]
대학을 졸업하는 스물넷이 고작 아침 7시 12분이다.'
그렇다, 스물넷이 고작 아침 7시 12분이다. 집을 막 나서려는 순간이다.
24시간은 1,440분, 1년에 18분씩, 10년에 3시간씩 가는 것
아침 7시에 일이 조금 늦어졌다고 하루 전체가 끝장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너무 늦었어!"라고 단정 지으려는 것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기만'의 문제다.
"인생에 너무 늦었거나, 혹은 너무 이른 나이는 없다."
[그대의 열망을 따라가라]
열망은 힘이 세다.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열정과 보람을 기준으로 삼을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좁고 험난한 길을 사서 가는 바보같은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에 우뚝 서 있다.
자신의 열정이 아니라 남들이 다들 좋다니까 선택하는 직업이란, 그냥 안정적이고 고소득이 보장되는 것 같아서 선택하는 직업이란 공허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미래가 이끄는 삶, 꿈이 이끄는 삶, 열망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열망을 뜻하는 영단어 'passion'은 아픔이라는 의미의 'passio'를 어원으로 한다고 한다. 그렇다. 열망에는 아픔이 따른다. 그 아픔이란 눈 앞에 당장 보이는 달콤함을 미래의 꿈을 위해 포기해야 한다는 데서 온다.
"돈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일했더니 돈이 생겨 있더라"-스티브 잡스
그는 참 바보같은 결정을 했다. 하지만 그 바보 같음이 그를 더 빨리 꿈에 데려다 주리라.
[너라는 꽃이 피는 계절]
가장 훌륭한 꽃은 없다. 저마다 훌륭하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 제가 피어날 철에 만개하는 것이다.
그대, 좌절했는가? 친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그대만 잉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잊지 말라.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 않은 화려한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읻. 그러므로 고개를 들어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라.
너무 일찍 출세하면 나태해지고 오만해지기 쉽다. 나태하므로 더 이상의 발전이 없고, 오만하므로 적이 많아진다.
어차피 인생은 크고 작은 굴곡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대의 전성기는 아직 멀리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다. 마지막에 어떤 꿈을 이룰 수 있느냐다.
인생에 관한 한, 우리는 지독한 근시다. 바로 코앞밖에 보지 못한다. 그래서 늦가을 고운 빛을 선사하는 국화는 되려 하지 않고, 다른 꽃들은 움도 틔우지 못한 초봄에 향기를 뽐내는 매화가 되려고만 한다.
기억하라. 그대가 노려야 할 것은 신인상이 아니라, 그대 삶의 주연상이다.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 않은 화려한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라.
[네 눈동자 속이 아니면, 답은 어디에도 없다]
내가 화살파 친구들을 보며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그들이 성장하면서 수없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자꾸 닫아버린다는 것이다.
지금 계획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인가, 하는 조바심은 내려놓고 미래설계의 문을 한 뼘쯤은 열어두어야 한다.
누구나 자기 가슴속에 답을 안고 산다는 뜻이다.
높은 계단을 오를 떄는 저 끝이 아니라 '눈앞의 한 계단'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자신의 지향점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상황의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나와 나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들게 하지 말고, 자신의 맨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때 행복한가?"
"나는 무엇을 가장 잘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 꿈을 계속 버전업하라.
그대의 눈동자 속이 아니면 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때로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좁은 계곡을 헤쳐 나가야 했던 강물이 비로소 소망했던 바다를 만났을 때의 막연함이랄까.
그러나 너무 괴로워 말라ㅏ. 이 불안을 동력으로, 그대는 때로 우연에 기대라.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은 복잡하고 너무 빨리 변해서 절대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대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라. 그래서 멋진 실수를 해보라. 실수는 자산이다. 대신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멋진 실수를 통해 배워라.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실수로부터 배우고, 그로부터 한 뼘씩 성장하는 자신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우연에 기대는 참된 방법이리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 그렇게 조급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목표를 상실한 나를 자책하거나, 그 목표에 조금도 다가서지 못하는 무력을 반성하기 전에, 내가 가진 가능성을 그저 믿었어도 좋았을 걸.
자신의 잠재력을 믿어다오.
다소 흔들리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말아다오. 그래서 손쉽게 목표가 보이는 고시니, 자격증이니, 스팩이니 하는 것에 너무 쉽게 그대의 무한한 간으성을 함몰시키지 말아다오.
[그대 그리고 고시: 안정에 성급히 삶을 걸지 마라]
안정성과 고소득을 기준으로 장래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훨씬 중요한 것을 고려해야 한다. 바로 일 자체의 즐거움이다.
불안이 성장의 참된 벗이라는 사실이다.
[아직 재테크 시작하지 마라]
아직 재태크 시작하지 마라. 대신 꿈꾸기를 시작하라. 오히려 한 달에 한 가지라도 '전혀 돈이 되지 않을 이리'을 찾아 시도해보라.
나의 실력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재테크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라]
"내게 나무를 벨 시간이 여덟 시간 주어진다면, 그중 여섯 시간은 도끼를 가는 데 쓰겠다"-에이브러햄 링컨
모든 일을 하기에 앞서 '왜 이일을 해야 하는지' 목표의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
걸레가 더러우면 청소를 열심히 할수록 집은 더 더러워지는 법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게으른, 부지런한 나태다. 자기성찰이 없으면 잘못된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헛된 노고를 계속하게 된다.
성찰이란 '생각하다'라는 뜻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직접체험하고, 많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떠나라.
세상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간접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읽을 것.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읽을 것. 그리고 자신에 대해 생각할 것.
대화는 독서만큼이나 유익한 경험의 통로다.
"여행이란 사회적 임사(죽음을 경험하는 것) 체험이다"-김민주
그대 자신을 만나러 떠나는, 그런 여행 말이다.
목표가 없으면 무의미하며, 방법론이 옳지 않으면 비효율적이고, 실천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어느 하나라도 모자라면 인생은 한 다리가 짧은 삼각대처럼 힘없이 무너진다.
삼각형의 중심점에 자기성찰이 있는 것이다.
때로 걸음을 멈추어보라. 그리고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을 돌아보라.
[부러워하지 않으면, 그게 지는거다]
나는 그대들이 질투라느느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부러우면 지는거다!"라는 말은, 결국 순간의 작은 자기위안에 그치고 말 우려가 있다.
경쟁이 끝을 모르고 치열해진 세상이다. 우리 눈에는 이긴 사람들이 휘날리는 승전기만 보이지만, 실상 항상 이기는 사람이란 없다. 누구나 조금씩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내가 얼마나 성장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열등감을 가지고 산다.
열등감을 인생의 밑짐으로 삼고 살아가면 어떻겠는가? 감추거나 부정하려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성취의 동력으로 인정하고 살아가면 어떨까? 그럴 때, 열등감은 인생의 풍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질투하는 대신 선망하라. 타인의 성취를 인정하라. 설령 그의 성공에 문제가 많아 보일지라도 그대는 오히려 그에게서 존중할 만한 점을 애써 찾아, 그것을 배워라.
한껏 부러워해라. 그래야 이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보고도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지는 것이다.
[슬럼프]
나는 슬럼프란 말을 쓰지 않아. 대신 그냥 '게으름'이라고 하지. 슬럼프, 라고 표현하면 왠지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서......
정지 상태에서 벗어나는 모멘텀을 줄 의지가, 머물러 있으려는 관성에 치여버리는 현상. 난 그것이 자네가 말하는 '슬럼프'의 합당한 정의라고 생각해.
그런데 문제는 말이야, 나태한 자신이 싫어진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 게으른 일상에 익숙해져서 그걸 즐기고 있단 말이지.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그걸 즐기고 있단 말이지.
"슬럼프란 더 생산적인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기간이다"
사실, 이 덕담은 거짓말이야. 너무 오래 나태하면 안돼. 자아가 부패하거든, 그러면 네 아름다운 육신과 영혼이 슬퍼지거든, 그러면 너무 아깝거든. 그러니 슬럼프, 아니 나태에서 '정말' 벗어나겠다고 스스로 각오해.
정말 나태에서 벗어날 참이면 코끝에 스치는 바람에도 삶의 의욕을 찾고, 그러지 않을 참이면 옆에 벼락이 떨어져도 늘 같은 상태라니까?
감정은 육체의 버릇이라는 걸 깨닫게 된 거지.
육체의 버릇보다 더 근원적인 건, '목표'의 문제야. 나태는 목표가 흐려질 때 자주 찾아오거든.
그 '좋은'이라는 게 무척 애매하거든.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어? '정말로' 원한다면 해결은 생각보다 쉬워, 시점을 짧게 두는 게 포인트야. 그래, 바로 '오늘' 해결하면 돼.
그냥 오늘 자전거의 첫 페달을 밟고 그걸로 만족하면 돼.
이런 육체적인 것들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나태 속으로 빠지게 되는 걸, 이미 여러 번 경험했거든.
일. 나태를 즐기지 마. 은근히 즐기고 있다면 대신 힘들다고 말하지 마.
이. 몸을 움직여.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고, 할 일을 해. 술 먹지 말고, 일찍 자.
삼.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 해. 지금 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아직도 나태를 즐기고 있다는 증거야. 그럴 거면 더 이상 칭얼대지마.
사. 아무리 독한 슬픔과 슬럼프 속에서라도, 여전히 너는 너야. 조금 구겨졌다고 만 원이 천 원되겠어? 자학하지마, 그 어떤 경우에도, 절, 대, 로.
모든 것은 흘러. 지나고 나면 이번 일도 무덤덤해질 거야. 하지만 말야, 그래도 이번 자네의 슬럼프는 좀 짧아지길 바라.
[시련의 나의 힘]
"로마를 로마로 만든 것은 시련이다.(중량) 전쟁에 이겼느냐 졌느냐 보다 전쟁이 끝난 뒤에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나라의 장래는 결정된다"-로마인 이야기
중요한 것은 시련 자체의 냉혹함이 아니다. 그 시련을 대하는 나의 자세다. 그 시련이 가혹한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것은 결국 오롯이 나다. 내가 힘들게 받아들이면 힘든 것이고, 내가 의연하게 받아들이면 별것 아닌 것이다.
깊이를 모르겠는 그 시련이, 바로 그대의 힘이라고.
'신은 사랑하는 인간을 시련으로 단련시킨다'고 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시련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왜냐하면 나를 강하게 만든 것은 시련의 힘이기 땜누이다.
축복이다. 시련이 있기에 그대가 있다.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는 그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소중한 '경험의 상속'을 하고 있는가? 이 순간 지쳐 있는 힘든 그대는 언어의 유희라고 고개를 저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의 진솔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명확한 진실이 여기에 있다.
시련은 그대의 힘이다.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바닥이 보이지 않아 깊게 느껴졌을 뿐,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우물에서는 아닐 수도 있지만, 인생에서는 항상 그렇다. 우리는 겨우 30cm 정도 위에서 죽을 줄 알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항상 그렇다.
문제의 핵심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깊은 바닥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닥이 두려운 것이다. 정말로 포기하고 줄을 놓아보라. 생각보다 많이 다치지 않는다. 인생에서 온몸이 산산이 부서질 만큼 깊은 바닥이란 많지 않다. 그대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착지한다면.
잠시 쉬어라, 다시 밧줄을 잡고 밖으로 나갈 만큼 기운을 차릴 때까지. 혹시 가능하다면 어둠 속에서 연습도 좀 하라, 좀더 쉽고 빠르게 올라갈 수 있도록. 충분히 밖으로 나갈 힘을 모았다고 생각되거든, 그때 다시 밧줄을 잡고 오르기 시작하라.
포기하는 것이 지속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그때 절감했다.
포기가 항상 비겁한 것은 아니다. 실낱같이 부여잡은 목표가 너무 벅차거든, 자신 있게 줄을 놓아라. 대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날개를 펼쳐라.
포기가 항상 비겁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불굴의 의지가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추락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마라.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더구나 그대는 젊지 않은가? 어떤 추락의 상처도 추스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너무 무서워하지 마라.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고 했다. 자신있게 줄을 놓아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날개를 펼치고.
[그 한 사람이 그대의 커다란 바다다]
인간관계란 좋은 파트너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좋은 파트너가 '되는' 일이다.
'그냥 좀 아는 사람' 수백명보다, 영혼을 기댈 수 있는 단 한사람이 중요하다. 내가 그에게 무한한 몰입을 보일 때에야 비로소 그도 나에게 마음을 열고 책임을 지게 된다. 누군가를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얼핏보아 대단한 자신감 같지만, 실은 매우 비겁한 처사다. 자신을 내던져 사랑할 용기가 없는 것이므로.
사랑의 용기와 책임을 모르는 비겁한 상대와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진심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생각하라.
그 한사람이 그대의 커다란 바다다.
[사랑따윈 필요없어 2.0]
"Love me like there's no tomorrow"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절실하게 우리는 사랑할 수 있을까.....
그대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에 빠질 수 있는가? 나의 빈 곳을 채워줄 수 있는 숨 막히는 그 매력만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를 사랑할 수 있는가?
나는 말하고 싶다. 청춘은 그럴 수 있다고, 적어도 청춘은 그래야 한다고.
사랑을 할 것이거든, 온몸을 던져 사랑하라.
연애감정은 청춘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렬하고 원초적이고 순수한 감정이다. 그 감정을 경험하지 않고 어떻게 예술을 알고, 학문을 알고, 인생을 알려고 하는가?
온몸을 던져 사랑하라.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라.
관계 속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다면 문제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서정윤<사랑한다는 것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에게만 몰입해줄 것을 바란다. 집착이다. 날개를 꺾어 곁에 두려고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상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서로서로 사랑의 이름으로 자기 요구만 한다. 욕심이다.
사랑이란 서로를 완성시켜가는 관계다. 거울 같은 것이다. 그 사람을 통해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최선의 자기, 최선의 상대를 만들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라. 결국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사랑따윈 필요없다.
사랑이란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므로,
[내 안의 혁명: 프리다 칼로 이야기]
진정한 몰두를 위해서는 자신으로부터의 혁명이 필요하다. 무엇을 성취하고자 할 때, 충분한 재능을 가졌는가는 부차적인 문제다. 문제는 그 무엇이든 우리 삶을 바꾸고, 동시에 우리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을 만큼 몰두할 용기를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늘 그렇듯 중요한 것은 실천이요 용기다. 그것이 혁명이다.
[내 인생의 오답노트]
우리는 상처를 입고 나서야 비로소 무언가를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한 번 했던 실수를 다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수학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도 '오답노트'가 필요하다. 다시 틀리지 않게 깨우쳐줄.
시간에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
성공하는 사람은 다르다. 자기를 돌아볼줄 아는 능력이 있다.
[누구나 지금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늙은 때다]
누구나 '지금'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늙은 때다. 더구나 누구나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해진다ㅏ.
미래가 불안한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그만큼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대, 실은 더 고민해야 한다.
마음껏 고민하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원점에서 검토하라.
다양한 정보를 찾아 나서라. 좋은 결정은 항상 좋은 정보에서 나온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폭넓게 책을 읽어라.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같은 어둠 속에서 헤매지 말고, 앞서 삶의 길을 걷고 있는 선배와 스승들과 깊은 얘기를 나누어라.
그대의 작은 고민들을 사랑하라. 필연이다. 온몸을 던져 생각하고, 번민하고, 숙고하라.
청춘이 정녕 힘든 이유는 부단히 쌓아야 하는 스펙 떄문이 아니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 무섭게 마련이니까.
[죽도록 힘든 네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염원이다]
그동안 '행복'이라는 단어는 사치였다. 성공하면 그게 바로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다들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는 깨달음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대, 지금 행복한가?
생활고에 쫓겨 스펙은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너무도 많다. 우리 주위에는 언론의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수많은 어둠의 공간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그대의 힘겨운 오늘이, 자신은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일 수 있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불평을 하느냐 감사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마쓰시타 고노스케
감사에 행복의 길이 있다. 혹시라도 그대가 깊은 나락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을 때가 오면, 이 한마디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죽고 싶도록 힘든 오늘의 그대 일상이, 그 어느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염원한 하루라는 것을.
[치열한 꿈꾸기]
숨 쉬는 것이 버거울 만큼 미래의 불안과 현실의 불만에 짓눌리면서 이처럼 엉뚱한 생각을 해보는 건 공연한 자위에서가 아니라, 나는 아직도 꿈꾸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치열한 나의 꿈꾸기.
난데없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잊었던 나의 꿈을 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일상의 자잘한 좌절과 회의에 몸을 떨 때마다, 나는 한결같이 같은 결론을 낸다. 현실에 치열하자.
치열한 꿈꾸기의 상실은 단순히 나이를 먹어감이 아니라, 안정과 안락의 보수성에서 비롯한다. 슬픔이 시인의 양식이듯, 불안은 치열함의 방부제다. 실패에 내재된 개혁성만이 그러한 꿈꾸기를, 늘 꿈꾹기를 포기치 않는 질긴 나르시시즘만이 그러한 치열함을 가능케 한다.
늘 꿈꾸기를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보다, 꿈꾸기를 망각하는 것이 백배는 더 무섭다. 따라서 꿈꾸기의 가장 은밀하지만 치명적인 적은 꿈의 성취 바로 곁에 숨어 있다.
힘 내. 이 한마디, 네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지금 선생님으로서는 이 말밖에는 할 수가 없구나. 힘 내.
길을 걷다 마주친 그 사람과 관련된 작은 기억의 조각에도 울컥 열병이 다시 도진다고..
너무 아파하지 마, 이런 말로는 네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걸 내게 문신처럼 남아 있는 기억으로 알면서도 지금 선생님으로서는 그저 이 말밖에는 할 수가 없구나. 너무 아파하지 마.
이 말이 너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렇게 아픈 건, 너만 그런게 아니야. 세상의 모든 이별이 다 그렇게 아파. 지금 저 거리를 바삐 오고가는 수 많은 아저씨와 아줌마,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모두 상실의 지독한 몸살을 앓았어. 저분들이 몸속에 실연에 버티는 항체를 키우고 별 일 없다는 듯 저렇게 살아가기까지는 독한 이별의 고통을, 그것도 여러 번 감내해야 했어.
사랑에 빠지면 이렇게 우리 몸 안에서는 호르몬의 축제가 벌어진다는가 봐.
연인과 헤어지면 몸속의 호르몬들이 다시 정상궤도(?)를 찾게 되지.
시간이 지나 호르몬의 금단현상이 사라지고, 인체의 항상 작용에 의해 다시 모든 호르몬들이 정상수치로 돌아올 때, 비로소 이별의 육체적 아픔은 끝나겠지. 그러면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준비가 끝나는 거지.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이래서 나왔나 봐.
그 사람이 너를 떠난 건, 네가 충분히 갖지 못한 '그 무엇'때문이야. 그가 내심 기대했지만 너는 충분히 줄 수 없었던 '그 무엇'. 그러면서 실은 한 번도 네게 정확히 말하지는 않았던 '그 무엇'. 바로 그것 때문에 그는 떠났어.
이렇게 네가 무너진다고 해서 그 사람, 다시 돌아오지 않아. 혹시 기회가 오더라도 그와는 다시 만나지 마. 다시 만나게 디더라도 언젠가는 똑같은 일을 다시 겪게 될 거야. 아까 이야기한 '그 무엇'을 네가 갖추기 전까지는.
'그 무엇'이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갖출 수 없는 것일지라도, 너무 좌절하지는 말아.'그 무엇'이란 무척 상대적인 것이거든. 네가 언젠가 만날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지금 네가 가진 그것이 너의 가장 큰 매력이 될 수도 있어.
그는 너를 사랑하기에 떠난 것이 아니야. 너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기에 떠났어. 이기적인 사람이지, 하지만 너무 원망하거나 욕하지는 마. 우린 모두 이기적이잖아. 하지만 누군가, 서로에게 이기적이고 싶지 않게 되는 사람이 저 거리 어딘가에 분명히 있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야. 다만 이번에는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것뿐.
자학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해. 너무 긴 힘듦은 아룸다운 널 병들게 할 뿐이야.
[작심삼일 당연하다, 삶의 방식이란 결심이 아니라 연습이니까]
결의를 실천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그 결심이 대부분 우리의 '습관'을 바꾸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습관을 바꾸는 일은 뇌 구조가 변해야 가능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달의 반복이 필요하다고 한다.
삶의 방식은 결의가 아니다. 연습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더딘 것을 염려하지 말고, 멈출 것을 염려하라.
연습은 참으로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작심하는 사항이 많을 수록 실패할 확률은 더 커진다.
한두 번의 작심삼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내일부터'의 결의는 마음의 위안일 뿐이다.
내일은 없다. 내일부터가 아니라, 오늘 조금이라도 한번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결심이 아니라 연습을 시작하라.
오늘부터, 지금부터.
[혼자놀지마라]
사람들과 부대낌을 피하려 하지 말라.
그대, 부대껴야 한다.
스펙에 도움이 되는 클럽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모임에 가입해야 한다.
사람 사이 모든 관계의 기본은 역지사지라고 생각한다. 간단하다. 남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말과 행동을 하고, 남이 나에게 했을 때 즐겁지 않은 짓은 하지 않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늘 '입장 바꾸기'를 연습해야 한다.
좋은 친구란 그리고 변치 않을 인간관계란 어딘가에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왜 감정없는 반쪽짜리 로봇이 되려고하는가? 컴퓨터를 끄고, 이어폰을 빼고, 온몸을 던져 사람들 사이에 그대를 내던져라.
[그대의 선생을 찾아가라]
먼저 찾아와 인사하고 안부를 전하며 고민을 털어놓는 학생을 내쫓을 교수는 거의 없다.
고백하건대, 교수들은 생각보다 수줍다.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어려워 한다.
[비린 듯 산뜻한 잉크 냄새로 아침을 맞으라]
모든 세대는 각각 자기 시간의 인식 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자신의 경험을 다른 세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무척 위험하다.
신문은 그대가 '원하는' 정보를 넘어, '알아야 할' 정보를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매체다.
[글은 힘이 세다]
자신을 가장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알리는 데 글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글은 여러모로 힘이 세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쓰는 능력'을 갖고 싶다.
유명한 작가의 글을 끊임없이 옮겨 적었다.
문장의 호흡을 길게 외워서 종이에다 펜으로 꾹꾹 눌러서 베껴 적으면, 그 작가의 스타일이 내 가습속에 그렇게 꾹꾹 흔적으로 남을 것만 같아서..
글을 잘 쓰려면 생각에 깊이가 있어야 하고, 논리와 구성이 탄탄해야 한다.
[네 이웃의 지식을 다양하게 탐하라]
그대 이웃의 지식을 다양하게 탐하라.
지식에는 서열이 없다. 시대의 수요가 있을 뿐이다.
[29,220피스의 퍼즐]
큰 '한 방'이 아니라 작은 '하나하나'가 쌓여야 하는, 대략 29,220피스를 맞춰야 하는 커다란 퍼즐 말이다. 요즘 평균수명이 80세쯤 되니까, '365 x 80 = 29,220'이고, 여기에 2월 29일을 20번 더해서 나온 숫자다.
인생이란, 하루라는 작은 조각을 맞춰서 커다란 그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퍼즐과 같다.
시계보다 필요한 것은 나침반이다. 삶의 성공이란 퍼즐의 마지막 피슬를 채웠을 때 판가름이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나아가 아침반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거울이다. '지금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를 수시로 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울보다 나침반을, 나침반보다는 시계를 더 찾는다.
인생의 성공이란 커다란 한 번의 성취가 아니라, 매일매일의 작은 승부로 직조하는 것이다. 그리므로 획기적인 승부처, 전환점만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낭비해서는 안된다. 무능한 사람일수록 '이것만 되면.. 이때만 오면...'이라는 가정을 자주 한다. 가정하지 말고 실행하라. 하루하루 조금씩 남는 삶의 빈큼에서 꽃을 피워라. 그 시간의 빈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은 조금씩, 조금씩 달라진다. 시간은 영혼을 만드는 유일한 재료라고 했다.
순간적인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고, 작은 실천을 먼저 행하라.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는 문제가 앞에 있을 때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하고 고민하지 말라. '이걸 위해 오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하고 고민하라.
"어느 누구도 과거에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수는 있다."
지금부터 그대의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라.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보게 될 그대의 인생의 커다란 그림을 생각하라. 오늘 하루 때문에 그 멋진 완성품의 한 구석이 듬성듬성 비어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에 대하여]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시간 없다'입니다"-박경철
인정한다. 허투루 흘려보내고, 그냥 때우는 시간이 수두룩한데도 '요새 너무 바쁘다'고 엄살을 떨어왔다.
'성공한 사람의 하루는 25시간, 실패한 사람의 하루는 23시간'이라고 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는 별 게 아니다. 결국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썼는냐의 문제다.
무엇을 위해 계획표를 짤 것인가, 즉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다.
포기는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니 할 일을 결의하기에 앞서, 포기할 것을 먼저 정해라.
곁가지가 많으면 큰 나무가 되지 못한다.
봄이면 정원사들이 거침없이 가지치기를 해주듯, 우리의 시간도 냉정한 구조조정을 해줘야한다.
내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버릇이 들어 하게 되는 행동, 다른 대안이 없어 하게 되는 행동, 그리고 다른 사람 때문에 할 수 없이 하게 디는 행동이다.
그냥 때우는 시간이 많아질 수록 존재의 두깨는 얇아진다. 무의미한 반복이 계속되는 취미, 혹은 시간 때우기를 당장 그만둬라.
TV 시청보다는 영화 감상을,
공상보다는 사색을,
수다보다는 대화를,
다이어트보다느 운동을,
늦잠보다는 피로를 푸는 토막잠을,
결국 시간관리란 곧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의 동의어다. 충분한 시간이 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틈틈이 나는 작은 시간을 그러모아야 한다.
'15분 내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바로 해결한다'
지금 하기 싫은 일은 이따가도 하기 싫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금 끝내고 잊어버리는 편이 스트레스가 적다.
애매한 시간에는 주로 잠을 청하거나 신문을 읽는다.
자투리 시간에 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것 중 하나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자신과 대면하는 일은 자신의 역량을 어떤 방향으로 길러나가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
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꼭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 싶은 사색에 빠져야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15분은 무지하게 긴 시간이다. 1~2시간 이상 긴 시간이 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자투리 시간을 잘 써라.
정작 여유가 생겼을 때, 계획하던 그 일을 제대로 한적 있었는가?
바빠야 오히려 시간이 난다.
바빠야 하고 싶은 일의 소중함이 비로소 절실해진다. 더욱 중요한 점은 바빠야 생활이 치열해져 시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시간이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그대는 미래의 그대에게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가? 시간을 그렇게 사용하라. 미래의 그대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사실 생각해보면 '한가한 시간'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 한가하다는 것은 급하게 혹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상대적으로 줄었다는 의미일 뿐이다.
시간도둑을 잡지 못하면 시간은 많았는데 한 일은 없는 황당한 경우가 계속 반복된다.
바쁠 때가 오히려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좋을 때다.
가장 바쁠 때 시간을 쪼개 '그 일'을 시작하라. 그렇다. 바로 지금 말이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하지 못한다.
인간의 삶에서 시간을 빼고 나면 무엇일 남을까? 시간은 우리 영혼을 만드는 재료라고 했다. 시간이 전부다. 그대의 내일은 오롯이 오늘의 24시간에 달려 있으므로, 그러므로 그대의 시간은 어쩌면 그대보다 소중하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사용법]
'카르페 디엠'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시에 나오는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라는 의미의 라틴어
'시간이란 덧 없는 것'
'평범한 삶을 살지말라'
'현재를 즐겨라'
행복이란 성공한다고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습하고 노력해야 하고, 인생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을 즐긴다는 것이 단지 쾌락적인 삶을 산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는 절제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지는 순간순간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인생을 즐기는 진정한 태도다.
지난간 나날에 대한 후회로 현재를 채워서는 안 된다.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필요 없는 의무감으로 현재가 비참해져서는 안된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가 흔들거려서는 안된다. 자신의 목표를 확고하게 하고, 그 목적지를 향해 순간순간의 발걸음을 뚜벅뚜벅 옮길 수 있을 때 현재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진정으로 '카르페 디엠'하려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야 한다. 비록 꿈의 내용이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어떻게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만큼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현재를 즐길 수 있다.
[그대 생활의 라임은 무엇인가?]
라임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작은 제약이다.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규칙이다. 흩어진 잡돌을 보배로 꿰어주는 실 같은 것이다.
우리 삶에도 라임이 필요하다. 자기가 만든 규칙을 지켜내려는 약간의 제약, 그 작은 생활의 규칙만 맞출 줄 알면 그대도 나도 인생의 시인이 될 수 있다.
우리네 일상이 라임을 가질 때 지긋지긋한 현실을 차고 올라 연꽃의 아름다움을 피울 수 있는 동력을 얻지 않겠는가.
그대에게는 스스로 지켜내는 제약이 있는가?
그대의 삼에는 규칙과 리듬이 있는가?
그대 생활의 라임은 무엇인가?
[기적이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1-1원칙'
'하루에 1시간씩 1년간 투자하면 무엇이든 꽤 잘할 수 있게 된다'
막연한 생각만 해왔던 소망도 1-1원칙만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상상속의 꿈이 아니다. 꾸준함의 힘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소박한 삶에서 나름의 성취감을 느끼면서 살기에 1-1원칙이란, 하나의 '최소한'이 아닐까?
연습하는 자와 저축하는 자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연습과 저축은 모두 미래의 달콤함을 위해 기꺼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 감수는 1만 시간처럼 무지막지한 양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기적이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재수를 시작한 너에게]
책임은 기대보다 무거워, 잔인해.
자기관리는 모두의 인생 문제야.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 능력'
연습이란 게 뭘까? 미래의 멋진 연기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반복하는 행동 아닐까? 김연아를 만든 것은 한 번의 멋진 점프가 아니라, 천 번의 엉덩방아였던 거야.
무엇을 하건, 오늘의 고통없이 내일의 성공은 없어.
성장은 좌절에서 오는 거야. 잘나갈 때에는 아무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지. 실패를 경험해야, 그떄 가서야 뭐가 문제였는지 돌아보거든.
그래서 인생 전체를 놓고보면, 처절한 실패보다 어정쩡한 성공이 훨씬 더 위험해.
실천하지 못하는 결심이란, 한낱 자위일 뿐이거든.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이란 건 말이지, 어느 날 좋은 글 읽고 느낀 게 있었다고 확 생기는 그런 능력이 아니야, 하루하루 조금씩, 조금씩 실천하고 살짝살짝 늘어가는 그런 능력인거야.
너에게 주어지는 기대에 합당한 자기관리를 시작해. 내일부터가 아니랴. 지금부터야. 내일은 지금, 오늘이 만드는 ㄱ ㅓ라고.
이제 한숨을 거두고, 바로 지금부터 너의 오늘을 바꿔.
[네가 내린 결정으로 삶을 인도하라]
새벽부터 흔들어 깨우는 그 목소리가 한 없이 원망스러웠지만, 엄마는 항상 나보다 늦게 잠들고 일찍 깨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엄마야 말로, 우리 생애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그래주실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핵심은 주체성이다. 설령 등짝에 천근 쇳덩이를 지고 있더라도, 그것이 자기 짐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솜처럼 가볍다. 하지만 남이 지워준 무게라고 생각하면, 우산 위에 내려앉은 눈조차 무거운 법이다.
['내일'이 이끄는 삶, '내 일'이 이끄는 삶
원래 기억이란 말하기 좋은 것만 오래 남는, 참 편리한 것이 아닌가
'내일' 중요하게 될 일을 하고자 했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 여길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을 하고자 한 결과다.
사람의 진로란 남이 좋다고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즐겁게 할 수 있는데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제에 연연하면 내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늘 '지금의 나'를 뛰어넘을 것을 생각하라. 기성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잠재력을 끝없이 확대해야 한다. 자기 세계에만 안주하고 있으면 무뎌진다. 그대가 스스로를 새롭게 만들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회가 그대를 오래되게 만들어 벌니다.
알은 스스로 깨면 생명이 되지만, 남이 깨면 요리감이 된다고 했다. '내 일'을 하라. 그리고 '내일'이 이끄는 삶을 살라.
[찌질이 '알파'들]
어른으로서 자신을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소용이 없다.
지식만 높일 것이 아니라 인생의 지혜도 함께 높여야 한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갖춘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찌질한 알파걸, 알파보이' 소리는 듣지 않도록 말이다. 진정한 '알파 인생'은 결코 스펙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왜 평생 한 번도 제대로 써먹지 못할 어려운 영어단어는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대의 행복을 좌우하게 될 중차대한 일들에 대해서는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대학은 그대에게 결승선인가, 출발선인가?]
인생에 무언가를 '보장'해주는 것 따위는 없다. 그냥 조금 유리한 출발선에서 서게 해주는 것뿐이다.
[스펙이 아닌, 그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라]
단 한 가지 이유라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마케팅하고, 자기 이름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브랜드의 핵심은 '하나의 초점'이다. 그대가 가장 잘하는 것, 그 한 가지에 집중해 그대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20대, 돈보다 중요한 것]
절실함을 잃으면 미래가 흐려진다.
그대의 가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동력으로 삼아라. 그러겠다고, 나와 약속해달라.
잚은 그대는 일의 가치를 당장의 수입으로 환산해 평가해서는 안 된다. 대신 그대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일의 가치르르 매겨라.
돈보다 중요한 것, 그것은 바로 그대의 미래다.
[일단 기차에 올라타라]
중요한 것은 어떤 출발을 했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남은 수많은 인생의 걸음들을 어떻게 걸어 나갈 것인가에 있다.
청춘이여, 일단 시작하라. 자기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일단 겸손하게 사회에 발을 딛어라. '입석3'등칸' 일지라도 일단 기차에 올라타 타라. 그리고 천천히 1등칸을 향해 움직여라. 그것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기차의 1등칸으로 단번에 뛰어오르는 것보다 쉬울 테니.
[교정을 나서는 그대에게]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를 번민했던 것처럼, 수많은 사회인들이 오늘도 '떠나느냐, 남느냐'의 갈림길에서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있다.
가장 아둔한 행동은, 경력개발을 이 회사 저 회사 옮겨다니며 조금 더 높은 대우를 향해 차근차근 사다리를 오르는 일로 생각하는 것이다. 직장생활에는 때로 당장 좋아 보이는 제안이나 달콤한 상상을 거부하고,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얼마나 큰 성과를 보일 수 있는지 스스로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우직함이 필요하다. 그런 우직함 없이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에 신의 없는 외톨이가 돼 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음의 거울을 자주 들여다 보라. 지난 꿈을 종종 회상하고, 다가올 미래를 설계하라. 그런 노력들이 하나둘씩 모일때, 그대의 삶은 팽팽한 줄 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균형의 끝자락에 성공과 보람의 조화가 닿아 있음을, 그대는 알게 될 것이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너무 분주하면 그것을 처리하는 데 시간과 정열을 다 써버리고, 정작 자기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일에는 나태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빠서 게으르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거울을 들여다보면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어색한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는 외줄을 타는 곳이다. 일의 성취와 개인적인 행복 사이에서 외줄을 타야 하고, 떠날 것인가 머물 것인가의 고독한 의사결정의 외줄을 타야 한다. 그래서 균형이 중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무너지는 순간, 삶 전체가 균형을 잃는다.
결국 자기 성찰이 중요하다.
자기를 잃는 순간, 균형은 무너지는 것이다.
마음의 거울을 자주 들여다 보라. 지난 꿈을 종종 회상하고, 다가올 미래를 항상 설계하라. 주어지는 기회가 기회인 줄 알 수 있도록 늘 준비하라. 그런 노력들이 하나둘씩 모일 때, 그대의 직장생활은 팽팽한 줄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균형의 끝자락에 성공과 보람의 조화가 닿아 있음을, 그대는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의 정점을 생각하다]
늙어감에 서글프지 않을 사람 어디 있겠느냐만, 이처럼 나이 든다는 것에 가벼운 희열마저 느끼게 된 것은 '인생의 정점'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고 나서부터다.
나는 해가 지날수록 내 자신이 성숙해짐을 느낀다.
그렇다. 나는 차츰 나의 전성기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점점 나의 전성기에 다가가고 있다는 기대감에 마흔 됨이 즐겁다.
내가 젊은 시절에 소망하던 것들을 제법 이루었다고 위안하고 나서도 새삼 깨닫는 것은, 나의 진정한 성장은 아직도 20여 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스물을 맞으면 성인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오롯이 가질 수 있게 될 것을 기대하는 열아홉 소년의 기억과, 지금 마흔을 맞는 소감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아아,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나는 20대의 비릿함과 30대의 미욱함을 이제 벗으려고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끝이 보인다는 거잖아?
음......, 아니다. 사실대로 이야기해주는편이 낫겠구나. 지금 보이는 끝이, 실은 끝이 아니야.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살은 온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ㄴ데, 그렇게 살고만 있는 나이 스무살
나는 네가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어. 어떤 자격이 아니라 지혜를 갖출 수 있는 경험 말이야. 20대는 사람을 배우고, 사회를 배우고, 그리고 인생을 배워야 하는 시기야.
"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just go"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가라'-<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래, 그냥 가. 실수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야. 배는 폭풍우를 견디며 바다에 있을 때 비로소 가치 있는거야. 문이 아무리 많아도, 열지 않으면 그냥 벽이야. 되도록 많은 벽을 두들기고, 되도록 많은 문을 열어봐. 청춘이라는 보호막이 너의 실수를 용인해 줄거야.
누군가 내게 과거의 나와 통화할 수 있는 전화기를 주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가 만약 스무 살의 나에게 딱 한번만 전화를 걸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청춘의 나에게 이 한마디를 해주고 싶어.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그러므로 너무 흔들리지 말라고. 담담히 그 성장통을 받아들이라고. 그 아픔을 훗날의 더 나은 나르르 위한 연료로 사용하라고. 내가 조금 어릴 적에, 이 책을 봤더라면, 나는 어쩌면 한뼘쯤은 더 자랐을지 모르겠다고.. 생각 했다.
아빠의 마음이 녹아 있어서 좋다. 고리타분한 이야기 늘어 놓는게 아니라, 정말 아빠의 마음으로 솔직하게 말해줘서.. 참 고맙다.
그리고.. 접어두었던 글을 다시 쓰고 싶어졌다. 다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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