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접해본 산문집 중 단연 최고의 책이다.
여행에세이를 탈탈 털어서, 일반 에세이를 탈탈 털어서, 산문집을 탈탈 털어서도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숱한 책 들 중에서 최고의 책이 될 것 같다. 앞으로도 밑줄 그은 낱말의 조합들을 하염없이, 때론 하릴없이 읽어 내려갈 것 같다.
챕터 하나 하나 넘기는게 몹시도 아까웠던 책...
사람의 마음을 털어내는 것은 이런 정도의 진솔한 듯한 느낌이, 수수한 듯한 느낌이, 그러나 그 안에 특별한 감정의 몽글거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다. 참 좋다. 무척이나 좋다.
이병률이라는 작가의 그들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었으나,
그 어디에도 비할 바가 아니다.좋다. 몹시좋다. 아.. 정말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나는 사랑합니다.
계절을, 계절의 냄새들을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어느 날 잠에서 깨어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자면서도 다니는 것 같아."
그리고 살면서 매번 인정했다.
뱃멀미를 못 참지만 사람멀미는 즐긴다는 것을.
사람한테 다정하지만 사람한테 까칠하다.
자주 숨고 자주 간절하며 가끔 미친다.
낯설고 외롭고 서툰 길에서
사람으로 대우받는 것,
그래서 더 사람다워지는 것,
그게 여행이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그것이 크게 다른 날들
어떤 면에서는 제가 몰입할 틈을 주지 않는다고 할까요.
나하고 잘 맞는, 내 맘을 알아주는 사람과 무대에 서는 날인가.
인생에 겉돌지 않겠다는 다짐은 눈빛을 살아 있게한다
음식도 그렇고, 좋은 눈빛을 가진 사람은 잘되게 되어 있다. 잘하겠다는 그 마음이 눈빛으로 옮겨가면서 마침내 좋을 수밖에 없는 결과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눈빛은 그 사람을 가장 절묘하게 드러내주는 설명서이자 안내서 같다.
무언가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싶을 땐 마땅한 눈빛을 찾는다.
좋은 눈빛에 흔들렸으면 한다. 그것이 살아가는 것이다. 쉬지 않는 눈빛과 마주쳤으면 한다. 그것이 다행한 일이다.
플랫폼에 서서 왠지 모를 두근거림으로 기차를 기다릴 때의 눈빛, 한번 마주쳤던 것으로 충분히 남아 있는 눈빛, 어느 한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과 같이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나갈 때의 그 눈빛, 호젓한 밤 산마을에서 나뭇잎을 흔들며 마음을 휘젓고 가는 바람 소리 같은 눈빛, 아무한테도 알리면 안 될 것 같은 사랑을 혼자 품기 시작하면서의 눈빛.
아무 생각도 들리지 않게 하는 그 좋은 눈빛을 한없이 쳐다보고 바라보다가 그 눈빛이 나에게 좋은 신호를 보내오면 나도 그 눈빛에게 팔을 두르고 오래 같이 가자 할 것이다. 사랑해도 되냐고 말할 것이다.
다시는 이런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
할말 같은 것들이 생기기도 하니까.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 덮어주고, 어려서 여린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끌어주고,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은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나중에 왜 울컥했어요? 라고 물으니 그가 말했다. 다시는 이런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
다시는.
그래도 된다면
슬쩍슬쩍 책을 가져다놓으시는 분, 고맙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하는 일이라 믿으며 하고 있는 일이 하나도 그렇지 않은 일이 되었다는 사실도, 또 누군가 내 행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뜨끔했다.
행복한 사람은 산에 오른다
인생에는 여러 길이 있지만 산의 길은 성실한 길이다.
사랑이 여행이랑 닮은 것은
사랑도 여행도 하고 나면 서투르게나마 내가 누구인지 보인다는 것이다.
한번 빠지게 되면 중독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도 닮았다.
또 사랑을 하거나 여행을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많은 사진을 찍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소중한 것을 남기고 간직하고 싶어하는 자연스런 욕구가 그 무엇으로 대체될 수 없듯 사랑의 대상과 사랑의 순간을 찍는 일이나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순간순간들을 담는 일, 그 둘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사랑과 여행이 닮은 또하나는 사랑이 끝나고 나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음번엔 정말 제대로 잘하고 싶어진다는 것. 그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
홀로 잠들어 있는 나를 덮어주던 그림자가 가만히 그림자 하나를 데리고 와서 옆에 누인 다음 그 둘을 혼곤히 잠들게 하는 것은 사랑이 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실은 미안하지만 동시에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두 사람을 거리에 남겨두고
아슬아슬한 사랑도 사랑인데, 사랑은 길이 많아서 그만큼을 헤매야 사랑일 텐데.
가슴에 맺혀서 지키고픈 무엇을 가졌습니까
온 마음으로 지키고픈 무엇이, 몇몇 날을 길바닥에 누워서라도 안 되는 것은 왜 안 되는 것이냐고 울고불고 대들 그 무엇이 가슴 한쪽에 맺혀 있는 것인지. 있다면 그걸 지켜내는 데 까짓 두려울 일은 그 무엇일지 당장 알고만 싶어졌던 것이다.
거울을 봐도 먼지가 보이지 않는다
조금 바보처럼 살아도 되겠다 마음먹고 살고는 있으나 바보 같은 사람을 만나면 풀어진 나사를 조여주고 싶어 안달하고, 느리게 살아도 되겠지 하면서도 바로 앞에 지름길을 놔두고 다른 길로 가겠다는 사람을 보면 눈이 삐었느냐 묻는 나는 이 얼마나 요란 복잡 시시한 사람인가 말이다.
누구나 애면글맨 살고 있다고 해도 사람이 되기 위해 사는 삶하고는 거리가 멀다. 모르긴 해도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네 번의 계절을 따로따로 진하게 물들일 사랑 같은 감정 말이다.
사랑한 그만큼을 앓아야 사람도 되고 사랑한 그만큼을 이어야 사랑도 된다.
눈에 힘을 빼면 이제 사랑도 보일 것 같다.
세상의 여러 맛을 보려고 사는 것 같아서
나와 많이 다른 사람 앞에서는 두렵다. 비슷한 사람하고의 친밀하고도 편한 분위기에 비하면 나와 다른 사람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속을 여미게 된다. 그럴수록 나와 같은 사람을 찾겠다면서 여러 시험지를 들이대고 점수를 매기는 게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기준과 중심들을 꺼내놓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이해하는지 이해 못하는지를 시험하는 것은 참 그렇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각자의 박자를 가지고 살며 혼자만의 시력만큼 살아간다.
'인간 소믈리에'
좋은 날이 많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얼마를 더 살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가 얼마를 더 살게 될 것인지를 셈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능력 밖의 일이고 우리가 관여할 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살아온 날들 중에, 좋은 날은 얼마나 많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감히 그 힘으로 살아도 될 그런 날들이, 그 힘으로 더 좋은 것들을 자꾸 부르는 그런 날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겁니다.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요컨대 우리 모두에게는 미처 열어 보이지 못한 마음이 남아 있는 법이다.
지금으로부터 우리는 더 멀어져야
내가 가는 길이 제 길이 아니었음 싶다. 길이 아닌 길은 두렵고 아득하겠지만서도 동시에 당신에게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도 할테니까.
비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 눈물이라는 감정만 사용했으면 싶다. 상처라는 말에 끌려다니기보다는 무시라는 감정으로 버텨냈으면 한다.
조금 많이 비운 상태로 되돌아가기 위해 무리하게 지불해야 할 것은 없겠다. 전화기를 끄는 일처럼 관계를 잠시 접어두거나 철저히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드는 일, 그럴 때 버스터미널에 가서 고개를 오래 들고 버스 시간표라도 확인하고 오는 일. 해진 양말에 손을 넣어 보며 어디를 다니다가 이렇게 됐을까를 생각하는 일. 그렇게 구멍들을 만들어 그 안에 숨는 일.
그러니 모든 것이 넘치는 세상에 문득 방문을 하시는 허무와 허전에게, 가을날 문득문득 우리의 심장을 두드리는 이 공허에게 대접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어지간히 따로가 아름답겠습니다
살아보니 당신이 보였습니다.
왜 섬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말이나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 가슴이 필요했다.
하루만 더 만나고 헤어져요
당신이 물었다. 어디를 갈 거냐고. 나는 그건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라며 만나서 결정해도 된다고 말했다.
원래의 우리 인간은 가능한 범위 안에서 비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신 옆에서만큼은 비겁하게 있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 사랑은 그랬다.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혼자 있고 싶었던 때가 있었음을 분명히 기억하라.
우리의 만남을 생의 몇 번 안 되는 짧은 면회라고 생각하라.
그 사람으로 채워진 행복을
다시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되갚으라.
외로움은 무게지만 사랑은 부피라는 진실 앞에서 실험을 완성하라.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함께 맡아지는
운명의 냄새를 모른 체하지 마라.
함께 마시는 커피와 함께 먹는 케이크가
이 사람과 함께가 아니라면 이런 맛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만날 때마다 선물 상자를 열 듯 그 사람을 만나라.
매일 기적을 가르쳐주는 사람에게
사람은 그 자체로 기적이에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마음 안에 그 한 사람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더 기적이지요.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 또한 황홀합니다. 혼자서는 결코 그 어떤 꽃도 피울 수 없다는 것도 황홀입니다.
사랑이 밑에 깔려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고, 얼굴 붉힐 일도 마음이 뭉치는 일도 없어지거든요. 일도 사람도 사랑한다고 주문을 걸고 사랑을 앞세우면 일도 사람 관계도 나아지는 것을 수도 없이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당신에게 전달하고픈 마음은 그렇고 그런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인생에 몇 번 올까 말까 한 감정임을 알아주세요.
가능하면 사람 안에서, 사람 틈에서 살려고 합니다. 사람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아서지요. 선뜻 사랑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사랑은 사람보다 훨씬 불완전하니까요. 아, 불완전한 것으로도 모자라 안전하지 않기까지 하네요 사랑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오래가지 못할거라는 불안을 포함하고 있고 나중에라도 그 좋은 사람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는 순간 감정이 그전 같지 않으면 어떡하나 무서워서 그래요.
사람으로 우리는 집을 지어요. 강렬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가져다 뼈대를 짓고, 품이 넓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가져다 지붕을 올리고, 마음이 따뜻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을 데려다 실내를 데웁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인생의 중심을 받칠 만한 사건이 없다는 것이지요.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간은 있습니다.
물이 닿은 글씨처럼 번져버릴까, 혹여 인연이 아닐까 나는 목이 마르고 안절부절입니다. 부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되어주세요.
그러니 내가 밑줄 친 사람이 되어주세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감히 당신에게 그어놓은 그 밑줄을 길게길게 이어갈 것입니다.
봄이 왔는데 당신이 가네요
오래전 기억을 더듬다가 벗겨진 세월의 껍질이 차분히 머릿속으로 감겨드는 것을 느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거의 모든 일들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 거의 모든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로서는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없지만 시간은 끊임없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수화로 일러줍니다. 그래서 시간은 우리와 적당히 거리를 두는 일과, 우리 몸에 바싹 붙어 지내는 일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흠씬 사람을 자라게 합니다.
시간은 또 선택하게 합니다. 그 힘겨운 선택이 최선이 아니었음도 알게 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한 사람이 오고, 아무도 모르게 그 사람 속으로 걸어들어갑니다. 내가 만든 감정인데 그 감정은 문득 나를 아프게 합니다. 시간이 허무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억세고 거칠어서 마음을 도려내지만, 시간이 하는 일은 순하고 부드러워 그 도려낸 살점에다 힘을 이식합니다.
시간은 거짓을 솎아냅니다. 시간은 거짓의 편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편이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서서히 퍼지는 광채
마음이 가려워서다.
그토록 처음이어서 강렬한 것이, 그만큼 강력한 것이 내 생에서 나를 몇 번 더 뒤흔들 것인지를 너무 이른 그때여서 알지 못했던 것이다.
마음을 전하다니. 마음을 전할 수 있다니. 전할 수 있는게 마음이라니.
나란 사람의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 간혹 찢어질 듯 너덜거릴 떄.
분명한 건, 사람 때문에 마음이 조금 기울었을 뿐인데 이러러 땐 마음을 말려야 되는 것인지 다려야 하는 건지 아니면 못을 쳐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람은 접으면 접혀지고 자르면 잘라지지만, 마음은 접어도 접히지 않고 잘라도 잘리지 않는게 무섭다.
어떤 대상을, 어떤 순간을 껴안는다는 것이 실은 고작 마음이나 껴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당신을 무엇을 좋아했습니까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했습니까. 무엇으로 얼굴이 붉어졌습니까. 그런데도 그 좋아했던 것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당신은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지요.
이토록 둔탁하고 뻔뻔해지는 것은 그만큼 대체되는 것들이 많아서겠지요.
좋아하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 것과 밀당하지 않습니다.
형, 단양은 어디예요?
새삼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고 했던 것이 이토록 저릿한 일이구나 싶기도 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별을 보려고 밤하늘을 향해 눈을 끔벅끔벅거렸다.
좋아한다고 말은 했을까
하늘은 높아지고 있었다. 하늘이 높아지는 것은 여름이 그치고 어쩌지 못한 감정들이 침착하게 한곳에 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한곳이라는 데는 바로 사람의 마음일 테고.
작은 다리 위, 누구나 그런 시간이 있었다
그곳은 그런 곳이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가버릴 감정들로 배불렀던 곳. 언젠가는 나에게도 곧 멋진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로 수면 위에 내려앉은 밤불빛들을 그렁그렁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곳.
참, 거짓말 같은 시간이었다. 참, 거짓말 같은 시간이어서 그토록 환했다.
잊지 못한다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난 것은 우연이었네. 우연이라 하기에도 뭣한 작은 조각에 불과한 것이 우리 두 사람을 올가미 친 것이네. 그 사랑에 쩔쩔매었던 것. 내가 낸 큰불의 연기로 질식해죽을 것 같았던 것.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이란 건 자신이 살아온 범위 안에서지. 자신이 고개 끄덕이고 싶은 방향대로일 걸세.
그녀가 내 옆에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그녀 옆에 있기로 작정한 것이었네.
내가 한 것이 정녕 사랑인가를 묻는 것이라면 그만두게. 내 대답으로 인해 내가 따라 걸었던 빛들이, 신었던 신발들이, 그리고 그 물컹한 푸른빛들이 자네 상식 안으로 이해되길 원치 않네. 사랑은 불가능의 결정인 상태의 것이라 모두가 쩔쩔매는 것이고 그토록 뼈저린 것 아니겠는가. 많이 사랑한 죄였을 것이네. 죄인줄 알면서도 사랑한 병이었을 것이네.
세상에 보탬이 되려고 그랬던 건 아닌데
그래도 가만히 기다리는 일이 커다란 일이기도 한 것이 예술하는 사람의 일이다.
사람이 꽃
"... 아무도 모르는 데에 가서 살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데요?"
척척하게 내가 물었다.
"글쎼요.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사람? 좋아서요. 물론 그 사람 때문에 바보가 되기도 하고, 먹통이 되기도 하죠. 한쪽에서 많이 좋아하면 가질 수 없다는데, 그렇다는데. 그러면서도 내가 많이 좋아했던 사람......"
"..... 비 맞히기에도 아까운 사람...."
"그런 사람하고 어떻게 헤어져요? 굉장한 인연인데 무엇 때문에요?"
질문은 이렇게 했지만 사람이 헤어지는 것에는 별 이유가 없는 법이다. 사람이 만나지는 이유가 특별한 것에 비하면 말이다.
"내가 많이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랬는데. 그렇게 돼버렸네요."
아름다웠던 낮과 밤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랑이라면 다른 세계로 옮겨가야 한다. 더이상 감정을 위조할 수 없다면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충격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땅만 바라보고 살았던 사람에게 어느 밤의 별들은 그 사람을 다른 세계로 이끌어준다. 이 세계가 아니면 다른 세계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믿게 하는 사랑. 그 사랑은 몇 번의 세계를 거치고 훈련하면서 먼 우주로 나아갈 수 있다. 작은 물이 모여 바다로 간다는 그 말처럼 사랑은 고통을 치른 만큼만 사랑이 된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이 사실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요.
내가 사람으로 행복한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얼만큼의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는 것을요.
우리 모두의 감정과 상관없이
가끔 우리는 사랑 앞에 눈이 멀기도 하는 거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만나고 헤어지고 난 뒤에도 한동안 길을 서성이게 한다.
길을 가다가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 길에서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좋아해야 할까. 사람을 좋아해야 할까. 지금 어느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된 이 감정 자체를 좋아해야 할까.
정신적인 건강도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 강한 호감을 느끼게 된다.
내 정신적인 건강도가 만약 B라면 그 사람 또한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닮은 점이 있다는 것은 좋아하기에는 충분하지만 그렇다면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 'B'인지도 모른다.
어깨를 오래 바라보든가, 시간을 길게 끌다가 그녀 옆에 나란히 서보는 것. 그러다 그 사람에게 정면으로가 아닌 그냥 벽이나 허공 따위에 대고 말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그 말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데요"라는 말의 다른 말이겠지만, 그럼에도 그러는 것은, 사랑은 떠올리지 말아야 할 불안의 모든 것을 담고 있어서다. 좋아하는데 손잡을 수 없고 가까이 할 수 없는 난감함의 이유는 명치까지 불안이 차올라 있어서다. 그것이 아니고는 이토록 사랑한다는 말을 참을 수 있는 힘이 나에게는 없다.
우리가 사랑을 하면서도 끝없이 외로운 것은 0의 그림자를 껴안고 있어서다. 무인도에 같이 가자 해놓고 무인도에 그 사람을 남겨두고 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랑을 하면서 0의 그림자를 데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사랑을 조금만 멀리 두려 한다. 너무 멀리는 두지 말고 가까이 있고 싶을 때, 냄새 맡고 싶을 때 달려가려 한다. 느슨한 감정에 숨겨놓은 긴장이 가져다주는 멀미를 당분간 즐기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으로도 침묵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라도 내 사랑을 말하고 싶은 것은 세상 한쪽에 자신의 감정을 신고함으로써 이제 사랑의 어떠한 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잡는 것이다.
사랑은 사람의 색깔을 더욱 선명하고 강렬하게 만들어 사람의 결을 더욱 사람답게 한다. 사랑은 인간을 퇴보시킨 적이 없다. 사랑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손바닥만한 사람 마음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주로 팽창한다.
우리는 사랑에게 엄청난 많은 것을 배웠으므로 그만큼의 빚을 지고 산다. 그것도 갚을 수 없는 아주아주 큰 빚을.
그랬나요 몰랐어요
아, 나는 그 무렵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추위만큼 혹독한 사랑을 하느라 날이 추운지 그때가 겨울이었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었겠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사람은 이토록 한쪽만을 보고 사느라 주변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생겨먹었습니다.
나에게 그 겨울은,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서 얼음 유리창으로 세상 밖을 내다봤던 이글루 안이었던 겁니다. 내 옆에 당신이 있었던 겁니다.
지금 어느 계절을 살고 있습니까
단감에서 나는 떫은 기운이 좋은 사람한테서 나는 진 같다고 느낀적이 있었다. 소설 쓰는 선배에게 농담 삼아 단감 같은 사람 만나서 연애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다가, 아마 그런 사람은 없을 테니 불가능할 거라는 소릴 듣고 말았다. 그토록 불가능한 맛을 품은 단감은 먹어도 먹어도 한참을 먹게 만드는 귀신이어서 나의 가을은 그렇게 익어가곤 하였더랬다. 그러다 알았다. 그 불가능한 맛의 정체는 겸손이라는 것을, 겸손한 사람은 빛이 날 수밖에.
'그리움은 눈 같은 것'
"그럼, 그리움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예요?"
세상은 보기 나름이고 그 나름이 사람을 형성한다.
지금 빠져 지내는 것 한 가지가 지금의 당신을 설명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당신은 지금 어떤 계절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지금 어떤 계절을 어떻게 살고 있다고 술술 답하는 상태에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계절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어디를 살고 있는지를 조금 많이 알게 해주니까.
큰 파도를 기다린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생길수록 살고자 하는 길의 방향이 더 선명해지고, 살아가야 할 이유 또한 명백해지니 나는 그저 그것이 고맙다.
오늘의 느낌은 안녕합니다
음식 만들기를 잘하는 사람은 왠지는 몰라도 그만큼 자기를 아끼고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 같다.
당신을 버린다는 것
당신을 만났지요. 축제 같아서 살았고, 당신이 내 빈 괄호를 채워준 것으로 힘이 났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세상에 갚아야겠다고 믿었지요.
비양도로 가는 배 안에서 사진을 찍어 보냈다
좋은 풍경은 사람을 두근거리게도 하지만 용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너는 나와 다른 지점에서 웃을 것이다. 나는 너와 다른 지점에 반응할 것이다. 너는 나와 다른 입맛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너와 다른 취향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부분을 가진 것이고 나는 네가 필요로 하지 않는 부분을 가진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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